[동아광장/김병종]그래도 축제는 계속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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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양식 구하느라 메말라버린 영혼의 곳간
축제는 그런 도시의 삶 적시는 한줄기 시원한 가을바람
열일곱살 맞는 과천축제… 한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과천은 한때 ‘가장 살고 싶은 도시’의 하나로 꼽히곤 했다. 시내로 들어서면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이라는 글귀와 마주치기도 한다. 과천이 ‘살 만한 곳, 살고 싶은 곳’이기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오랜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추사 김정희는 만년에 처소를 과천에 마련하고 스스로 과농(果農)이라는 호를 지어서 썼다. 일테면 과천에서 글 농사 짓는 농부임을 드러낸 호인 것이다. 그의 편액(扁額) 중 고옹태지(古翁苔池) 같은 글에 과농이라는 호가 보이는데, 자연을 완상하며 모든 정쟁과 세속 잡사로부터 자유로운, 글 짓는 늙은이의 한가로움과 여유를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늘 한가롭던 과천은 근래 유난히 몸살을 앓았다. 정부청사 이전 발표와 함께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보금자리주택, 지방세율 문제 등 갈등의 한가운데에 놓이면서 민과 관이 함께 패닉 상태가 되다시피했다. 연일 온갖 격한 구호가 나부끼고 소란스러운 집회가 잇따랐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런 어수선한 와중에도 변함없이 ‘문화, 교육도시로서의 과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행사들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유월 개관한 추사박물관이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실학박물관과 학술, 교육, 문화 교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산과 추사라는 두 거봉(巨峰)을 과천과 남양주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추사박물관에는 그의 부친 김노경의 별장인 과지초당과 추사가 조석으로 물을 길었다는 옹정 등의 유적과 유물이 있고 특히 일본의 후지쓰카 가문으로부터 양도받은, 주옥같은 작품도 다수 보관되어 있다.

추사박물관의 콘텐츠가 전통문화의 집대성이라면 올해로 열일곱 번째를 맞는 과천축제는 가히 한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라 할 만하다. 해를 더할수록 경험과 연륜이 축적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대 공연예술축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그 프로그램의 목록만 들여다보아도 가슴 설레는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다. 신명나는 ‘통영오광대’ 공연, ‘전통 줄타기’ 등 국내 예술단체들의 알찬 공연과 더불어 해외초청 공연 역시 풍성하고 매혹적이다. 프랑스 스피랄 극단의 ‘원’, 한국과 호주가 공동 제작한 ‘파편의 산’, 벨기에 시르크 극단의 ‘위대한 카페’, 슬로베니아 류드 극단의 ‘거리미술관’ 등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이 즐비하다. 프랑스 오스모시스 극단의 ‘철의 대성당’은 철과 기계, 산업현장 속 노동자의 언어를 무용수들의 신체에 녹여낸 작품으로 세계 초연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전거 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하고 형상화한 ‘투르 드 코리아 인 과천’ 공연이 궁금하다. 다양한 형태의 자전거와 차량들이 실재 도로를 질주하고 구르고 부딪친다. 터지는 불꽃의 화려함 속에서 현실을 달콤쌉싸름하게 풍자한다니 가을의 초입에서 맞을 수 있는 근사한 한바탕의 야외축제가 될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일상은 팍팍해지고 도시는 메말라간다. 스스로는 모르는 채로 사람도 도시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일상의 양식을 구하느라 영혼의 곳간이 메마른 지 오래임을 잊고 살았다. 건물 외벽에 걸린, 손글씨로 쓴 시 한 줄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지만 그 이상은 언감생심이다. 축제는 그런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적시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다. 과천에서 펼쳐질 축제 한마당에 멀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초청해 본다. 편한 발걸음으로, 쭈뼛거리지 말고 마당 가운데로 뛰어들어 보기를, 목청껏 노래해 보기를, 신명나게 어깻짓을 해 보기를 청해 본다.

참가한 사람들 마음마다 신바람이 환한 가을볕처럼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지푸라기 하나만 더 올려놓아도 무릎이 꺾일 것 같은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서른세 명의 낯선 사람들과 옹기종기 앉아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건 어떨까?

‘세상은 자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걸 알까?’ (극단 크타·프랑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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