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증세 없는 복지’의 허망함을 보여준 기초연금 축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정부가 기초연금을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지급 방안을 논의해온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제안을 바탕으로 소득 하위 70∼80% 노인에게 소득에 따라 연금을 차등지급하거나 국민연금과 연계해 지급하는 방안 중 하나를 26일 발표할 예정이다. 어떤 경우든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일괄 지급하겠다는 공약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어서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뚜렷한 노후 대책이 없어 생활고와 자살로 내몰리는 노인은 정부가 보호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에 가입돼 있고 가족이 부양할 수 있는 노인까지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란(本欄)은 거듭 지적했다. 내년도 복지예산이 100조 원을 넘어선 데서 보듯 급격한 고령화로 복지비용은 가만있어도 불어나게 돼있다. 복지공약 수정은 후퇴이긴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며 되레 지속가능한 방안이다.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박 대통령 임기 내 공약 이행에만 135조 원이 든다. 경기회복이 더뎌 올 상반기에만 세금이 10조 원이 덜 걷힌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한 박 대통령이 무슨 수로 이런 거액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무리한 공약이었다. 근로소득세 감면을 줄여 슬그머니 증세효과를 거두려 했던 정부의 시도는 봉급생활자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좌초함으로써 증세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불요불급한 세출을 줄인다고 해도 복지공약을 모두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은 간단한 셈법이다. 이런 상식을 박 대통령만 몰랐다는 것인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약 후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으나 진 장관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진 장관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일 때는 당시 임채민 복지부 장관에게 ‘0∼5세 무상보육’ 등을 밀어붙인 전력이 있다.

공약 수정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정부는 이미 4대 중증질환 대책에서도 간병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3대 비급여 항목에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0∼5세 무상보육은 재원 부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반값등록금은 연간 7조 원이 필요한데 교육부는 3조3000억 원만 신청했다. 정부 스스로 무리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기초연금은 박 대통령 공약의 핵심 중 핵심으로 상징성이 크고 대상자도 많다. 박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 대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기초연금에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함으로써 논란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기초연금#복지공약#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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