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 씨 일가의 백기투항으로 ‘사회 정의’ 바로 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어제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가족의 대표가 검찰청사 앞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이 전 씨 일가와 기자회견 내용을 협의했고 수용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검찰로서도 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소임을 다했음을 재국 씨의 회견을 통해 알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의 시효가 다가오면서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국회가 이른바 ‘전두환 법’을 통과시켜 이를 근거로 시작된 검찰의 압박 수사가 16년 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묵은 숙제를 해결했다.

전재국 씨는 이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부친이 당국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씀을 하셨고, 저희들도 그 뜻에 부응하려 했으나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전 씨 일가가 내놓을 재산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추징금 확정 이후 16년 동안 전 전 대통령은 과거 부하들을 몰고 다니면서 골프를 즐기며 “가진 것이라고는 29만 원밖에 없다”는 식으로 버텼다. 전 씨 일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질 대로 커졌다. 진작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고 속죄하는 자세를 보였더라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집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자녀들의 온갖 재산 내역이 들춰지고, 친척들까지 검찰에 줄줄이 불려 들어가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군사 반란과 광주의 유혈 진압, 그리고 대통령 재직 시의 천문학적인 뇌물 수수와 관련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심판정에 세운 것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김 대통령은 임기 말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전 전 대통령을 사면 복권했다. 그때 추징금을 완납하는 조건으로 역사를 청산했더라면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씨 일가가 부정하게 축재한 돈으로 자녀들까지 수백억 원대 재산가로 살아가는 모습을 국민이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급 입법’이니 ‘연좌제’니 하며 ‘전두환 법’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부정 축재한 돈이 없었다면 젊은 자녀들이 거부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국회의 전두환 법 입법과 검찰 수사는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조치였다고 본다.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었다.

전 씨 일가는 국민에게 속죄할 기회를 수없이 걷어찼다. 검찰이 전방위 압박 수사를 벌이자 마지못해 끌려나와 재산을 내놓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국민이 선뜻 박수를 보내겠는가. 서울 연희동 사저와 경남 합천 선산 등을 내놓는다지만 감동할 국민은 별로 없다. 역사의 화해와 용서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 위에서 이뤄진다.

전 전 대통령이 통치한 5공 내내 경찰서와 구청 등 공공기관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여러 정권에 걸쳐 실종됐던 사회정의가 이제야 비로소 구현된 느낌이다. 미완의 심판이 비로소 완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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