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종찬]경제는 경제논리가 왕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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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근 경제가 어렵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전·월세 가격은 계속 오른다. 찜통더위가 계속돼도 에어컨조차 제대로 못 켠다. 정부나 정치권은 나름대로 부지런히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실효성이 없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대책들이 많아 걱정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최근 전·월세 가격이 올라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집값이 예전처럼 크게 오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집을 사서 빌려 주는 사람은 적어지고 집을 빌리려는 사람은 크게 늘어나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다.

임대료 안정 대책으로 정치권 일부에서는 전·월세 규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임대료를 얼마(물가상승률 등) 이상 못 올리게 하자는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나. 원칙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올라간다. 주택 임대료도 다를 것이 없다. 임대료 안정 대책은 임대 수요를 줄이거나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임대료를 규제하면 임대주택 공급은 줄어들고 임대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악화할 것이다. 과거에도 임대료 규제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향후 임대료를 얼마 이상 못 올린다고 하니 미래의 임대료 인상분까지 미리 올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근본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다주택자도 임대주택 공급자이므로 각종 세금 중과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도 비슷한 경우다.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려면 공급이 늘거나 수요가 줄어야 되는데 분양가 상한제를 하면 공급은 줄어들고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일시적인 가격 안정은 되겠지만 근본 대책은 안 된다. 우리 국민 중에는 많은 사람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원가+적정이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파트 분양가를 공개하고 분양가를 규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와 같은 논리 때문이다. 그러면 최근처럼 아파트 가격이 원가 이하로 하락해도 소비자가 ‘원가+적정이윤’으로 사 주겠는가.

1980년대는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를 더 강하게 규제해 일일이 심사해 허가했다. 그 결과 국민 일인당 소득은 80년 1645달러에서 1990년 6147달러로 3.7배로 늘어났는데도 주택 보급률은 71%에서 72%로 1%포인트밖에 늘지 않았다. 소득증대로 아파트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분양가 통제로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으로 80년대 말 집값이 폭등해 자살자가 나오는 등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결국 공급 확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 건설을 발표했다. 그 후 500만 호 주택 공급으로 90년대는 집값이 안정됐다. 2008년 금융 위기 전까지 세계적으로 집값이 올랐으나 분양가 규제를 도입한 나라는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밖에 없다.

최근 전력 문제가 심각하다. 전력 부족은 공급보다는 급속한 소비증가가 원인이다. 우리나라 전력 소비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많은 편이다. 전력 공급 확대는 원자력의 안전성 시비, 환경규제 등으로 한계가 있다. 결국 전력 소비를 줄이고 합리화해야 한다. 전기 소비 증가의 주요인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 요금에 있다. 가스와 디젤을 태워 만드는 전기는 가스와 디젤보다는 비싸야 한다. 전기 냉방이나 전기 크레인이 가스 냉방이나 디젤 크레인보다 싼데 전기 소비가 줄어들겠는가. 한전은 2012년 말 현재 54조 원의 차입금이 있다.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고 매년 상점 온도를 단속할 것인가. 전력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전력 요금이 저렴하다고 공짜는 아니다.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결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

정부 각 부처가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대책을 보면 많은 부분이 정부 예산 사업, 또는 공기업에서 고용을 늘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급한 일이 아닌데 고용 증대를 위해 투자를 늘리는 것은 예산 낭비다. 세금 나눠 주기나 같다. 오히려 진주의료원 예에서 보듯 공공부문에 비효율이 많으므로 재정 개혁이 필요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빠르다. 경제민주화가 지나쳐 기업 의욕을 꺾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의료, 관광 등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 업종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현행 제도가 유지돼도 급속한 노령화로 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므로 새로운 복지제도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포퓰리즘 정책을 방지하려면 시장경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국민이 경제논리를 무시한 규제 위주의 경제 정책을 선호한다는 것은 경제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에 왕도는 없다. 경제는 경제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jcchoij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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