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포츠를 국수주의로 오염시키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일요일인 28일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이 개최된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한국의 응원단 ‘붉은 악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응원을 했다. 일본의 응원단 ‘울트라닛폰’은 일본 자위대의 군기(軍旗)로 사용되고 있고 한국인들의 뇌리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는 욱일기(旭日旗)를 흔들었다. 축구 경기 중에 플래카드는 철거되고 욱일기는 압수됐다. 두 가지 모두 상대팀을 배려하지 않은 경박한 행동이었다.

일본의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붉은 악마의 플래카드에 “극도로 유감”이라고 항의했으나 자국 응원단이 욱일기를 사용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관방장관도 욱일기가 한국인이나 중국인에게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깃발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 욱일기를 갖고 가지 않도록 자국인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

울트라닛폰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욱일기를 관행적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한국이나 중국과의 경기에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붉은 악마가 플래카드에 인용한 신채호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욱일기가 뿜어내는 전투성에 비하면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에 군기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플래카드도 축구장에는 맞지 않는다.

1970년 월드컵 예선전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관중의 충돌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 간 스포츠 경기가 폭력과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다. 역사적 악연이 뒤얽힌 한국 중국 일본은 상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2007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중국 관중은 일본 역사교과서가 난징(南京) 대학살을 왜곡한 것에 항의해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중국 국가를 불러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축구 3, 4위 결정전에서 일본 응원단은 욱일기를 흔들었고 한국 대표팀 박종우 선수는 독도 세리머니를 했다. 비슷한 일이 1년도 안 돼 반복된 것은 감정의 골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간 스포츠 경기가 국민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은 애국심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수주의적인 애국심에 바탕을 둔 응원은 스포츠를 오염시킬 수 있다. 스포츠는 스포츠로 즐겨야 하며 스포츠에서 정치는 배제되는 것이 옳다. 일본 응원단이 욱일기를 흔들면 그것대로 비판하되 한국 응원단까지 스포츠를 정치로 오염시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스포츠#국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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