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명 중 1명꼴로 비리 수사 받는 국세청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검찰이 2006년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로비와 함께 금품을 받은 정황을 잡고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자택과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다. 전 씨는 2007년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죄로 실형을 살았다. 또 국세청 후배인 한상률 씨(17대 청장)에게 그림 ‘학동마을’과 함께 인사 청탁을 받은 혐의로 2년 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아내가 한 일”이라는 전 씨의 석연치 않은 해명을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했다.

전 씨(16대)를 포함해 국세청장 자리를 거쳐 간 19명 가운데 8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현실적으로 국세청장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진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따지면 1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청장이 수사 대상이었다. 그중 안무혁(5대) 성용욱(6대) 임채주(10대) 전 국세청장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불법 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손영래(13대) 이주성(15대) 전 국세청장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CJ 사건과 관련해서도 허병익 전 국세청장 직무대행이 국장 시절 미화 30만 달러와 고가의 시계를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허 씨는 달러와 시계를 당시 국세청장인 전 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국세청과 청장의 품격이 땅에 떨어졌다. 고위 간부가 뇌물을 주고받는 조직에서 어떻게 일선 세무공무원들이 깨끗하고 공정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비리가 있을 때마다 국세청은 자정(自淨)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자정 노력에만 맡겨서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국세청은 검찰, 경찰과 함께 청렴도가 가장 낮은 기관으로 꼽혔다. 갖고 있는 권력이 클수록 ‘더 큰 권력’과의 유착, 또는 검은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국회에서 국세청장 2년 임기제, 국세청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세청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전 씨에 대한 수사는 CJ그룹의 비자금을 수사하는 도중에 시작됐고, 비자금 수사는 2008년 CJ 재무팀장의 청부 살인 사건에서 비롯됐다. 손만 대면 새로운 비리가 불거지는 판이다. CJ그룹의 로비가 국세청에 한정되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CJ가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에게 대선 자금 수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나와 있다. 청부 살인 사건 이후 CJ 비자금의 정황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기회가 적어도 세 번 있었지만 번번이 그냥 넘어갔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높은 불신을 털어내기 위해서도 한 점 의혹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세청장#비자금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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