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차지완]세비(歲費)가 참 아깝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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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완 사회부 차장
차지완 사회부 차장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못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즘처럼 세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다. 어린이 통학차량의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일명 ‘세림이법(法)’을 뭉개고 있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처신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세림이법을 제안한 것은 3월 29일이었다. 같은 달 26일 충북 청주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난 김세림 양(3)의 희생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법규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여러 의원이 본보 제안에 공감해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경쟁하듯 발의했다. 정부도 본보 제안 한 달 뒤인 5월 3일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내놨다. 여야 간 이견이 없었고 정쟁의 대상도 아니어서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달 중순이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는 세림이법의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18개나 상정됐다. 대부분 내용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에 하나의 대체 개정안으로 묶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안심사소위를 열어야 하지만 소위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의혹을 둘러싼 여야 간의 정쟁 탓에 민생 법안인 세림이법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그렇게 6월 임시국회는 종료됐고, 세림이법은 9월 정기국회의 숙제로 넘어가게 됐다. 다수의 교통전문가가 “세림이법이 엉뚱한 정쟁의 희생양이 됐다”고 개탄했다.

도로교통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는 이미 ‘전비(前非)’가 있다. 운전 중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시청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도 1년을 질질 끌다가 이달 2일에서야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해 5월 DMB를 보던 화물차 운전자가 경북 상주시청 사이클 선수단을 덮쳐 3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친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DMB 시청 처벌 법안의 늑장 처리는 우리나라 의원들이 국민 안전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세림이가 우리 곁을 떠나기 한 달 전 경남 창원에서는 7세 어린이가 태권도장 승합차에 옷이 끼인 채로 끌려가다 주차된 화물차에 머리를 부딪쳐 숨졌다. 이달 18일에도 대구에서 6세 어린이가 태권도장 통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어린이의 아버지는 본보 취재팀에 “왜 지금껏 통학차량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느냐”며 흐느꼈다.

세림이 엄마는 세림이를 잃은 충격에 배 속에 있던 아이까지 유산했다. 의원들이 제정신이라면 세림이 엄마 앞에서 이렇게 태업을 벌일 수는 없다. 얼마나 더 어린 생명의 희생에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자신들이 당한 일이라면 과연 그렇게 입으로만 생색을 내는 데 그쳤을까.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의원들이 오히려 더 고통을 주는 현실에 죄 없이 비명에 간 어린 넋들에게 그저 죄스러울 따름이다.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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