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리비 새는 아파트 단지 11개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0일 03시 00분


서울시가 처음으로 아파트 관리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비리가 많이 드러났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근거 없이 7000여만 원을 써버렸는가 하면, 근처 공사장의 소음과 진동 피해 보상비로 1억5000만 원을 받고도 주민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유용한 사례도 있었다. 한 입주자 대표는 전(前) 대표와 소송을 벌이면서 장기수선(修繕)충당금 1억1000만 원을 갖다 썼다. 아파트 보수 공사를 무자격 업체에 맡긴 곳도 있었다.

이번에 서울시 공무원과 법률 회계 전문가로 구성한 조사단이 6월 한 달간 11개 단지를 조사한 결과 모든 단지에서 비위 사실이 168건이나 적발됐다. 이들 단지는 비리 제보나 조사 요청이 들어온 103개 단지 중에서 우선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곳이다. 서울에는 아파트 단지가 3641개(2012년 말)나 된다. 다른 곳도 조사해보면 더 많은 비리가 나올지 모른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관리비 비리로 검경에 적발된 사람만 6000여 명이다. 비리는 대부분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용역업체로 이어지는 ‘검은 먹이사슬’에서 발생한다. 입주자 대표는 수십억∼수백억 원을 주무르는 자리여서 대표 선거를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서울시엔 지난해 4500여 건의 아파트 민원이 들어왔는데 그중 30%가 주민 대표와 관련된 것이었다. 대표들은 뒷돈을 받고 엉터리 공사업체를 선정하거나, 재활용품 판매비와 장기수선충당금을 빼돌렸다. 감사가 있지만 회계를 모르거나 대표와 같은 편이어서 있으나 마나였다.

비리를 뿌리 뽑으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아파트 주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뒤늦게나마 정기적인 외부 감사와 공사 계약서 의무공개를 대책으로 내놨다. 서울시는 인터넷에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을 만들어 각종 아파트 관리 정보를 공개하고, 아파트 관리비가 적정한지 컨설팅도 해줄 계획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주민들이 꼼꼼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아파트에 산다. 관리비는 연간 12조 원에 이른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제도를 보완해야 아파트 관리가 투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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