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차지완]불량 만두 트라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차지완 사회부 차장
차지완 사회부 차장
4월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과 경제팀장 등을 불러 불량식품 수사 워크숍을 열었다. 결론은 두 가지. 우선 대량으로 불량식품을 생산해서 유통하는 과정에 수사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경찰력이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까지 투입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수사 결과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발표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섣부른 발표가 자칫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찰이 수사 초동단계에서 이런 논의를 거친 것은 2004년 6월 불량 만두 파동의 악몽 때문이다. 만두소로 이용된 무를 ‘쓰레기 수준의 무’라고 발표했던 경찰과 이를 ‘쓰레기 만두’라고 선정적으로 표현한 대다수 언론 보도의 결과는 처참했다. 만두업체 사장이 투신자살했고, 만두업체 전체가 고사 위기에 몰렸다. 불량 만두 파동의 학습효과 탓인지 한동안 불량식품 수사는 경찰의 손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불량식품은 척결해야 할 ‘4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최우선 수사과제로 떠올랐다. 유통기한이 지난 쇠고기 닭고기 누에분말, 사료용 다시마로 만든 불량 맛가루 등을 유통하거나 제조한 업자들이 줄줄이 입건됐다.

불량 만두 파동의 트라우마와 4대 사회악 척결의 공명심이 교묘히 결합된 수사 결과는 한심했다. 불량식품업체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조기에 차단해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고 애써 강조한다. 그러는 사이 유통업체와 소비자로 이어지는 시장의 불안과 불신은 연쇄 폭발하듯 커져만 갔다. 이게 조심스럽고도 신중한 발표의 결과라면 믿겠는가.

정부가 이번 불량 맛가루 파동을 교훈삼아 ‘선(先) 안전성 조사, 후(後) 수사결과 발표’로 바꾸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제품의 실명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조치로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이 완성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량 맛가루 파동만 돌이켜봐도 수사기관의 실적경쟁이 낳은 부작용이 드러났다. 수사기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회수를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협조체계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노출됐다. ‘수사기밀’을 이유로 제때 알려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불량 맛가루 제조업체 관계자는 경찰에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 다른 업체는 더 심한 원료도 사용하는데….” 궁지에 몰리니까 그냥 하는 소리라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찜찜하다. 이런 불량업자들을 추방하기 위해서라도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량 만두 파동의 트라우마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