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格 때문에 틀어진 남북, 格 낮추는 말싸움은 접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북한이 어제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면서 “괴뢰 패당의 오만무례한 도발적 망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당국회담에 털끝만 한 미련도 없다”면서 “이번 사태의 후과(後果)를 남한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통일부는 “북측이 적반하장식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 반박했다. 북이나 남이나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6년 만에 찾아온 남북대화는 북한의 고집과 오만으로 무산됐다. 일부에서 우리 측의 대응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으레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벌어지는 남남갈등이 거의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책임을 전가하려는 북한의 말싸움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번 남북회담의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전면에 부각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남북 실무접촉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격을 무시하거나 깨고 진행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라고 했다. 회담이 무산된 뒤에는 북한의 행태를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통일부는 아무 권한도 없는 꼭두각시, 핫바지”라고 한 비아냥도 청와대를 겨냥한 것이다.

어차피 남북회담은 청와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북한의 공격을 받기 쉽고, 통일부의 존재는 가벼워진다. 결정적인 순간이나 난관에 빠졌을 때 택할 카드도 줄어든다.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듯한 발언이 자주 나와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남북회담이 무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양쪽 모두 냉각기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대화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남북한이 마주 앉아야 한다면 그 시점은 빠를수록 좋다. 남북 사이에는 마냥 미뤄둘 수 없는 현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책을 논의할 때 꽉 막힌 남북관계는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 차원의 접촉이다. 양측 모두 재가동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성공단을 매개로 대화가 이어진다면 냉각기는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다. 북측에서 개성공단 실무를 총괄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과 남측의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나선다면 격 문제로 옥신각신할 이유도 없다.
#남북대화#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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