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이 갑자기 보낸 대화 보따리 조심스럽게 풀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개성공단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뒤 우리 정부의 당국 간 대화 제의를 거부하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더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하자며 역(逆)제의를 해왔다. 북한이 제안한 내용만 놓고 보면 남북 관계의 완전한 복원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화 의제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인도적 문제, 6·15남북공동선언과 7·4남북공동성명 기념행사 개최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정부는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힌 뒤 12일 서울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자고 다시 제안했다. 이를 위해 판문점 연락사무소 등 남북한 연락 채널의 재개를 요청했다. 북한은 제의에 진정성이 있다면 우리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2007년 5월 21차 회담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남북 장관급 회담은 남북 관계 전반을 논의하는 최상급 대화창구다.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해서도 장관급 대화 재개는 필요하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회담 제의는 7, 8일 미국에서 열리는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최룡해 특사의 중국 방문 때 중국이 요청한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해 중국 측 체면을 세워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에 대한 기념행사를 제안한 것은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남북 합의 이행을 압박하려는 속내로 추정된다.

우선 개성공단 문제를 푸는 것이 급선무다. 군(軍) 통신선의 재가동부터 시작해 현재 개성공단에 묶여 있는 완제품과 원·부자재의 반출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이라야 북한 근로자의 개성공단 복귀와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공단의 운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달러 확보를 위해 서두르는 금강산 관광 재개는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광객 신변 안전에 대해 문서로 보장을 받아야 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핵 문제는 남북이 아닌 북-미 사이에서 풀겠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고조시켜 온 주요한 원인은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다. 남북 대화가 궤도에 오르면 비핵화 문제를 제쳐놓아서는 안 된다.

북한이 우리의 대화 제의에 호응한 것은 북한의 무력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신호를 보낸 현 정부의 접근법이 어느 정도 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받아들이고 고립과 쇠퇴의 길을 버리라”고 말했다. 추념사가 나온 뒤 1시간 반 만에 북한은 대화를 제의했다. 북한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 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강경 대치 일변도의 한반도 정세에 전환점을 마련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통 큰 대화 제의’에 취해서는 안 된다. 협상의 원칙을 갖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원칙은 분명하다.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하고,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끌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대화 제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