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효]국방-외교개혁 방치하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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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정의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외교안보를 뒷받침하는 두 개의 기둥은 정책과 조직이다. 현안을 다루는 정책은 국가전략에 따라 구체화되고, 전략과 정책의 성과는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부처와 사람의 경쟁력, 즉 조직에 의해 결정된다. 박근혜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기면서 대북(對北) 관계와 주요국 외교의 기본 틀을 갖춰가고 있는 데 반해, 외교안보 조직에 대한 개혁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조직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으면 같은 예산과 인력을 쓰고도 성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방개혁이다. 병사를 키우는 양병(養兵) 조직과 전투를 지휘하는 용병(用兵) 조직이 따로 작동하는 군의 지휘체계를 단일화하고 육해공(陸海空) 3군 간 합동 전투력을 극대화하려는 취지에서 입안한 게 이명박정부의 ‘국방개혁 307계획’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 국회의 국방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온갖 이유로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이 개혁안은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군 특명검열단’의 군 지휘체계 개편안과 사실상 같은 것이다. 당시 야당은 통합사령관 격인 국군참모총장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해당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1972년에 백지화된다.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문민화 시대에 이르러 40년 만에 다시 추진한 똑같은 취지의 국방개혁안을 여전히 쿠데타 가능성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사불란하게 전략지휘와 전투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은 안보전문가들의 오랜 주문사항이다. 강력하고 일원화된 한미연합사의 특장(特長)을 지키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우리 군 조직의 이원화된 지휘체계를 고수한다면 이는 모순(矛盾)이다.

각 군이 유사한 기능을 따로따로 수행함으로써 군 조직은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비전투 부대와 조직에 그만큼 많은 장성을 앉혀 놓고 있다. 국방비를 무한정 늘리는 것만이 안보를 중시하는 게 아니다. 같은 예산으로 얼마든지 더 효율적이고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데도 각 군이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고 요직을 다투기에만 급급하다면 민영화를 거부하는 공기업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사랑받는 군대로 거듭나려면 국방은 군만이 알고 군만이 잘할 수 있다는 폐쇄주의를 거두어야 한다.

좋은 외교관을 뽑아 잘 기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작년에 출범한 국립외교원은 기계적인 필답고사에 치우친 외무고시 대신 외교관의 직분에 부합하는 적성, 전문성, 창의력을 지닌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그런데 이를 추진하는 부처들의 타성이 작용하더니 이름만 바뀌었을 뿐, 서술시험의 과목과 형태는 예전과 대동소이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선발 방식을 도입하고 부처의 인사제도에 전문성과 경쟁의 기준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무사안일주의 앞에서는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부는 1969년 당시의 설립 취지로 돌아가 통일의 초석을 다지고,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처방을 강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북한의 올바른 변화와 무관하게, 겉으로 보이는 남북 교류의 양(量)과 빈도(頻度)만으로 통일부의 실적과 영향력를 평가하는 조직구조로는 대북정책 판단에서 주관성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평소 국가정보원과 통일부가 대북정책 방향을 놓고 판이한 시각을 갖고 대립하는 일이 잦은 것도 알고 보면 사람이 아닌 조직 기능의 충돌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고 새 정부는 늘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옳고 필요한 개혁이라면 국가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계속 발전시키고 다듬어가야 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등용한 직업공무원은 개개인을 놓고 보면 유능한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 해당 조직에 속한 일원으로서의 공무원은 모험과 혁신을 주저하고 조직의 영향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데만 매진하기 쉽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밤늦도록 온갖 보고서를 숙독한다고 해도 일선 부처들이 빠져 있는 매너리즘과 보신주의의 관행을 꿰뚫어볼 수는 없다. 조직 개혁과 쇄신의 적기(適期)인 임기 초반에 박 대통령에게 진정 필요한 참모는 오직 나라의 발전과 국정의 성공만을 잣대로 놓고 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관료조직의 원성과 불평을 사더라도 필요한 것은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우직한 조언자가 필요하다. 결국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요, 개혁의 요체는 타이밍이다.

김태효 객원논설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thkim01@skku.edu
#외교안보#정책#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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