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대 성장을 전제한 아슬아슬한 공약가계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일 03시 00분


박근혜정부가 임기 5년 동안 134조8000억 원을 마련해 104개 국정과제를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50조7000억 원을 마련하고, 정부 씀씀이를 줄이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84조1000억 원을 끌어온다는 구상을 밝혔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걷어 어디에 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은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이다.

하지만 ‘증세 없는 공약 이행’이라는 원칙과 박 대통령이 제시한 숫자를 지키려다 보니 135조 원에 이르는 전체 규모와 틀을 크게 손보지는 못했다. 경기 침체로 세수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해 대선 기간에 제시한 공약 재원보다 세입을 2조3000억 원 줄이는 미세조정에 그쳤다. 세출은 2조6000억 원을 더 줄이기로 했으나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전체 재원의 58.8%인 79조 원은 복지공약에 쓴다. ‘부자 노인’ 논란이 일었던 65세 이상 노인에게 최대 20만 원씩 지급하는 국민행복연금에 17조 원, 5세 이하 무상보육이나 무상교육에 11조8000억 원이 들어간다.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하는 재원까지 고려하면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선 때 남발한 지역공약 이행도 복병이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11조6000억 원 삭감한다고 해놓고 다음 달 내놓을 지역공약 이행계획에 SOC 예산을 대거 끼워 넣을 경우 세출 구조조정의 의미는 퇴색할 것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3%, 내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4% 성장한다고 보고 공약가계부를 짰다.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세수 확보에 차질이 빚어진다. 비과세·감면 정비나 지하경제 양성화, 금융소득 과세 강화로 전체 재원의 36%인 48조 원을 걷겠다는 목표도 달성하기 힘들어진다.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기업 투자와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를 살리는 일이 필수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차관은 “공약가계부는 재정 운용의 기본적인 틀이지, 반드시 지켜야 할 금과옥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양면성이 있다. 유연성을 지향한다는 말도 되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발을 빼기 위한 핑계로 삼을 수도 있다. 경제팀은 공약가계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되 바꿔야 할 때는 과감한 공약의 수정과 속도 조절을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공약가계부#박근혜#경제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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