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주시(主視)와 마음의 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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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최근 세계랭킹 1207위 데릭 언스트(23·미국)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웰스 파고 챔피언십 우승이 화제가 됐다. 그는 어릴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외눈 골퍼’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스윙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언스트는 오른손잡이 스윙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잡이는 대부분 주시(主視)가 오른쪽 눈인데 그동안 고생 많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팔, 다리는 두 개씩이지만 일반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보다 힘이 세고 정확성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우수하다. 눈도 마찬가지다.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눈은 하나다. 이를 주시(eye dominance) 또는 지배안(支配眼)이라고 한다.

자신의 주시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엄지와 검지로 만든 동그라미를 통해 두 눈을 뜬 채 약 5m 앞의 특정 대상을 쳐다본다. 이 상태에서 한쪽 눈을 번갈아 감아보자. 이때 원안에 그대로 그 물건이 보일 때 뜨고 있는 눈이 바로 자신의 주시다. 달리 설명하면 오른쪽 눈을 감았는데 물건이 원 밖으로 사라졌다면 그 사람의 주시는 오른쪽 눈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자신의 주시를 알고 플레이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조준’이 필요한 스포츠 종목이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사격, 볼링, 골프다.

사격은 조준선 정렬이 생명이다. 가늠자와 가늠쇠, 표적을 한 점에 일치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주시만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격선수들은 주시가 아닌 눈을 가릴 수 있게 검은 덮개가 부착된 사격용 고글을 사용한다.

드물지만 왼쪽 눈이 주시인데 시력도 왼쪽 눈이 더 좋은 오른손잡이가 있다. 이런 병사는 특등사수가 돼 포상휴가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한 총기 관련 사이트는 이런 ‘고민’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노하우(cross eye dominance shooting)를 소개하고 있다. ‘가늠자에 눈을 대지 않아도 되는 권총은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려 왼쪽 눈으로 조준하라.’ ‘총기천국’다운 ‘섬뜩한 지침’이다.

볼링에서도 스플릿(핀이 떨어져 남아 있는 것)을 처리하려면 정확한 릴리스가 필요하다. 주시를 동원해 마치 옛 미국 TV드라마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자신의 구질과 핀 위치를 종합적으로 감안한 정확한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

프로골퍼들이 그린에서 주시만 뜨고 퍼터 샤프트를 자신의 얼굴 앞에 늘어뜨린 채 퍼팅 라인을 읽는 모습은 낯익다. 퍼팅 어드레스 때 고개를 약간 틀어 주시를 공 바로 위에 위치시키면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레슨코치들도 있다.

주시가 시력도 좋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은 시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 투성이다. 그중 컴퓨터 전자파는 시력 저하의 주범이다. 일단 나빠진 시력은 잘 회복되지 않지만 생활습관을 고치면 눈이 다시 좋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작업 1시간 후 10분 휴식, 적합한 밝기의 조명, 야외에선 선글라스로 자외선 차단 등 눈의 피로를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 방법을 알아도 실천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흥미로운 것은 주시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변하는 것처럼. 로마 공화정시대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음의 눈’이 닫혀 있거나 왜곡돼 있으면 세상을 그렇게 파악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속성이 이럴진대 안과적 시력만 좋다고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못지않게 ‘마음의 눈’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지 않던가.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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