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식민통치 배상하는 영국, 역사 부인하는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8일 03시 00분


영국 정부가 1950년대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독립투쟁에 참여했다가 가혹행위를 당했던 케냐인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해주기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 대상자는 최대 1만 명이고 총 배상액은 수천만 파운드(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정부가 손해 배상을 결정하기까지에는 가혹행위를 당했던 70, 80대 케냐 노인들의 끈질긴 법정 투쟁이 있었다. 케냐인 5명은 당시 식민정부로부터 고문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당했다며 2009년 영국 정부를 상대로 영국 법원에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지금까지 영국 정부는 “식민정부 때 있었던 일은 현재의 케냐 정부가 모두 승계해 영국 정부와 무관하다”는 견해를 유지해왔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로 모든 문제가 종료됐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강제징용, 군대위안부 등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의 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영국은 자신들의 가혹행위를 입증하는 기록물이 공개되면서 국내외에서 압박이 거세지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과거 나치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배상을 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전범 기업’들도 배상에 참여한다. 영국도 개별 배상에 동참했다. 반면 일본은 1965년 당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납부한 ‘후생연금’의 탈퇴 수당을 달라는 신청에 대해 일본 정부는 “99엔(당시 환율 약 1470원)을 받아 가라”는 결정으로 이웃나라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고 난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더 우려스럽다. 아베 총리는 군 위안부 동원에 정부 간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 계승을 거부하는 듯한 언동을 했다. 심지어 “침략에 관한 정의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해 주변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 사실마저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망언(妄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침략을 부인하는 행보로 국내에서 지지율이 더 올라갈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양식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는 영광은 물론이고 과거의 잘못도 승계한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국가는 문명국이라고 하기 어렵다. 요즘 일본은 주변국에 고통을 준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며, 특히 지도층의 가치 부재가 심각하다. 일본의 ‘역사 망각’은 주변국과 문명국의 ‘역사 연맹’ 필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식민통치#영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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