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과서 안 출제’만으로 사교육 막을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국무회의에서 “교과서 외에는 절대로 (시험에) 출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선행학습에 대한 강력한 근절 의지를 밝힌 것이다. 자녀의 실력이 뒤처질까봐 불안한 학부모가 초등생에게 중학 과정을, 중학생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도록 하는 게 선행학습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학원 과외를 더 중시하고 학교에서는 잠잔다.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가계에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는 과도한 선행학습을 바로잡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교과서 안에서만 시험문제를 내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선행학습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보다 앞서 실력을 쌓으려는 것이다. 학교성적 때문이라면 선행학습보다는 복습이 좋다는 것을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은 알고 있다.

현재도 대다수 학교들이 ‘교과서 안 출제’ 원칙을 지킨다. 시험문제지를 교육청에 제출해 선행학습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는지 점검받는다. 출제경향이 객관식에서 기술형으로 바뀌고 있어 선행학습은 일반학교 시험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제는 국제중 영재고 과학고 외국어고와 같은 특목고다. 이 학교들은 경쟁이 치열하고 교육과정에 맞는 수학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선행학습 욕구가 크다. 따라서 선행학습을 막으려면 특목고 선발방식과 커리큘럼을 손대야지 일반학교에 ‘교과서 안 출제’를 강요해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

선행학습이 무조건 나쁜지도 따져봐야 한다. 무리하게 미리 배우는 것도 문제지만 충분한 역량과 실력이 있는데도 못 배우게 하는 것은 평둔화(平鈍化) 교육이다. 선행학습이 가장 심한 과목인 수학의 경우 어디까지 초등생이, 어디까지 중학생이 배워야 할 개념인지 칼로 무 베듯 구분하기도 어렵다.

박 대통령은 참고서가 필요 없도록 ‘친절한 교과서’를 만들어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주도 학습은 태도의 문제이지 교재의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만으로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있고, 참고서가 아무리 많아도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있다. 요즘 교육청들은 참고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충실한 온라인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를 이루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관건이다. 교과서만 달달 외워서야 창의적 융합적 사고를 하는 인재를 기를 수 있겠는가.
#박근혜#사교육#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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