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개콘 성공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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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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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올해 설 연휴 KBS의 특집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은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개그콘서트’. 1999년 개콘이 시작된 이래 매주 1, 2개 코너가 통째로 편집된다고 한다. 이날은 통편집된 ‘굴욕 코너’만을 모아 방송했다. 지금은 개그계의 ‘대세’가 된 허경환, 황현희, 신보라 등이 통편집 코너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코너가 왜 전파를 타지 못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예상을 깨는 반전이 약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하는 공감 포인트도 부족했다. 한 진행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팔만대장경을 볼 때의 지루함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진행자는 통편집의 단골 개그맨에게 “아이디어뱅크이긴 한데 제1금융권은 아니다. 제3금융권 정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도전이 아름다운 것은 관객들의 싸늘한 반응과 숱한 실패 속에서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 황현희의 ‘불편한 진실’이 싹텄기 때문이다. 개콘의 서수민 PD는 창조경제로 머리를 싸맨 박근혜 대통령에게 “개콘의 장점은 언제든 재도전할 수 있는 공개경쟁 시스템”이라고 훈수를 뒀다.

박 대통령은 서 PD의 얘기에 ‘맞아 맞아’를 연발했으리라. 박 대통령은 “실패하더라도 몇 번이고 도전해 성공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고 정부도 이런 방향으로 제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패해도 괜찮다’는 힐링의 언어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얼마 전 기자에게 교수 시절 개콘을 봤는데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개콘이 왜 재밌느냐고 물었더니 그 안에 숨겨진 문화코드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하나도 앞뒤 맥락을 알아야 웃을 수 있는 판에 아무런 맥락 없이 튀어나온 창조경제가 한국의 산업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실패해도 괜찮다’의 핵심은 ‘컨트롤+X’(삭제)가 아니라 ‘컨트롤+V’(덧붙임)에 있다. 실패하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실패한 부분부터 수정,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떤 정부에서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보완해 발전시키겠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옛 정부의 색채를 지우고 새롭게 포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등 각 시대의 고민은 새 정부의 탄생과 함께 ‘컨트롤+X’가 됐을 뿐이다.

창조경제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청년들의 도전정신이 싹트고 재기 시스템이 만들어질 리 없다. 정부 정책부터 실패 속에서 배우고 그 안에서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5년 뒤 가장 먼저 ‘컨트롤+X’가 될 것은 다름 아닌 창조경제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반전#공감포인트#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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