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한옥과 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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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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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건축물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가 일찍이 ‘음예(陰예)’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깜깜한 밤중에 한옥의 바깥으로 나오면 불이 켜져 있는 방안에서 창호지를 통해 빛과 그림자가 일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겨운 그 빛이 음예의 한 가지 예다. 햇빛이 비치는 낮 시간 한옥의 방안에 앉아 있으면 창호지를 거쳐 여과된 은은한 빛이 내부를 채운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얻는다.

▷미국인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로버트 파우저 씨는 서울 경복궁 옆 서촌(西村)의 한옥에 산다. 그는 한옥의 곡선미와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삶의 공간을 사랑한다. 주한 외국인 가운데는 한옥에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60, 70년대 원주민들이 하나둘 떠났던 서울 북촌의 한옥들은 값비싼 주택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주최하는 고택(古宅) 1박 2일 체험은 신청자가 많아 평균 경쟁률이 15 대 1에 이른다.

▷한국관광공사는 ‘한옥 스테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해 일본의 료칸(旅館·여관) 같은 국가적인 숙박 상품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한옥을 이용해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수한 한옥에 인증을 해주고 운영과 홍보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료칸은 일본 전역에 5만5000곳이 영업 중일 정도로 널리 뿌리내리고 있다. 8세기 나라시대 때 시작된 료칸은 외국인에게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닌 일본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호텔보다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운 숙박시설로 인정받는다.

▷‘한옥 스테이’가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한옥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를 잘 살피면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너도나도 한옥을 말하는 것은, 편리하긴 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서양식 주거에 뭔가 답답함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옥 스테이’가 우리 고유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옥의 미학을 극대화해서 현대인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한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한옥 스테이#료칸#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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