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프란치스코 새 교황, 인류에게 박애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그제 오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12억 가톨릭 신자가 고대하던 새 교황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스스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교황에 선출됐다. 비(非)유럽권에서 교황을 배출한 것은 시리아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의 일이며 세계 가톨릭 인구에서 약 41%를 차지하는 남미 대륙의 사제가 수장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새 교황은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택했다. 청빈과 박애의 삶을 살았던 이탈리아의 성자 프란치스코(1182∼1226)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20세 때 모든 재산을 버리고 7년 뒤 수도회를 설립했다.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데 평생을 바쳤던 그의 삶은 당시 세속화한 교회에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신임 교황은 그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힌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식사를 손수 준비하고 버스로 출퇴근하며 소박한 삶을 실천했다. 사람들은 말 대신 몸으로 사회적 약자를 도운 그를 ‘빈자(貧者)의 대변인’이라고 불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5년 교황 선출 때도 유력한 후보로 꼽혔을 만큼 교회 내부에서 신망이 두텁다. 신학적으로 그는 낙태 동성결혼 안락사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진보 노선을 걸었다. 좌파 성향의 해방신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극심한 빈부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대립 각을 세웠다.

다음 주 공식 취임하는 새 교황의 앞길에는 교회 통합과 개혁을 향한 숱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 내부 권력다툼과 성직자의 잇따른 성 추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당면한 과제다.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서 세계 평화와 종교 간 대화에 기여하고, 물질 숭배와 무한 경쟁에 내몰린 21세기 지구촌에 연대와 관용,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할 임무도 안고 있다.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화학자를 꿈꾸던 22세 청년이 사제의 길로 들어선 지 반세기가 흘렀다. 이웃의 구원을 위해 몸을 바치는 예수회 소속 수도자로서 항상 낮은 곳에 임했던 그가 ‘하느님의 대리인’ 자리에 올랐다. 사랑과 희망을 전파하고 박애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사도(使徒)의 지난한 여정이다. 물질 대신 정신의 가치를 존중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마음이 가톨릭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온 누리에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프란치스코#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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