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누가 그를 떠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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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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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한용외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66)을 처음 만난 건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에서였다. 대한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인 그가 대표팀 지원단장 자격으로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 대형 식당의 엘리베이터는 손님들로 북적댔다. 당시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장향숙 집행위원은 휠체어에 앉아 있던 터라 번번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밀려났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장 위원의 수행 비서에게 “휠체어는 천천히 챙겨 오라”고 말한 뒤 장 위원을 번쩍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평범한 옷차림에 수더분한 인상. 체육회 말단 직원이겠거니 했던 그가 바로 한 전 사장이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지만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사장, 삼성재단 총괄사장, 삼성사회봉사단 사장 등을 역임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그는 한국 장애인체육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체육회 전신인 장애인복지진흥회를 이끌었다. 이천 장애인종합훈련원은 그가 삼성을 통해 100억 원을 지원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없었다.

그는 지난해 런던 장애인올림픽이 끝난 뒤 사표를 냈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장애인체육회에 실망해서였다. 이 단체 윤석용 회장은 2010년 직원을 지팡이로 때려 벌금형을 받았다. 2011년에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전단을 배포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조직의 수장이 각종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서 장애인체육회는 크게 흔들렸다. 감독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다 못해 올 1월 윤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문화부의 조치 이후 한 전 사장은 부회장단의 추대를 받아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당시 사표는 수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전 사장은 장애인체육회 직원들의 추락한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직무대행을 맡았다고 했다. 윤 회장에게 미움을 산 직원들의 징계도 모두 풀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실천할 수 없었다. 문화부의 처분에 반발한 윤 회장이 행정소송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장애인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 임원의 직위를 박탈할 수 있다. 벌금형에 그쳤던 윤 회장은 지난달 중순 업무에 복귀했다. ‘윤 회장 체제’로 돌아간 장애인체육회는 5일 이사회에서 한 전 사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한 전 사장은 사재 10억 원을 출연해 다문화가정청소년복지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어릴 때 너무 가난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고비마다 도와주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장애인체육을 아끼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그가 더는 장애인체육을 위해 일할 수 없게 됐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 그 양반이 그랬다죠. 헌신하려던 마음을 접었다고. 내 심정이 그래요.”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한용외#대한장애인체육회 부회장#런던 장애인올림픽#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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