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대치동 맘을 뛰어넘는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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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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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학교 동창인 세 엄마가 만났다. 두 명은 대치동에서 자녀를 국내외 명문대학에 보낸 ‘선수’들이고 한 명은 신입이다.

“우리 둘째는 AP 하고 있어” “그게 뭔데?” “어드밴스트 프로그램이라고 고교 때 미국 대학과정 미리 이수하는 것 말이야.”

“아는 사람 아들은 지균으로 서울대 갔더라.” “지균이 뭐야?” “지역균형선발. 너 입시제도 공부 좀 해야겠다.”
3000여 가지 대입 전형 간소화를

암호 같은 두 사람의 대화에 신참은 귀를 쫑긋 세웠다. 어느 학원이 좋은지, 과목별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3시간 남짓 이어진 대치맘들의 대화는 “우리 때처럼 학력고사 하나로 대학 가던 시절이 나았다”로 이어졌다. ‘개념 있는’ 엄마들이라 “대입제도가 너무 복잡해 어려운 집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가기 더 힘들어졌다”는 사회적 걱정도 했다.

“우리 아들 입학사정관제 자기소개서 써 보니까 보통 사람들은 못 쓰겠더라.”

“입학사정관제는 원래 미국 대학들이 동문 자녀나 기여 입학 받으려고 만든 거 아니니.”

입시제도에 통달한 대치맘들의 대화는 새 정부 교육정책에 시사점을 던진다. 박근혜 정부는 3000여 가지에 이르는 대입제도를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는 시험성적 외에 다양한 경험을 반영한다는 취지가 좋고 일부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 자율이란 이름으로 입시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고 우리 사회 신뢰수준으로 볼 때 비중을 줄여야 한다. 2011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에서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 감소와 관련이 없고,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이 높은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율형사립고 역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자사고 찬성론자들은 교육의 수월성(秀越性)과 다양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창의성을 높이고 토론식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마당에 좀더 어려운 영어 수학 문제 푸는 걸 수월성이라 말할 수는 없다. 교육을 다양화한 것도 아니다. 일반고에서 쉬운 EBS 수학 문제를 풀 때 자사고는 어려운 일본 수학 문제를 풀 뿐이지, 교육의 진정한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고교의 수직적 다양화보다 수평적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획일적인 교육을 더 어렵게 시키느냐 쉽게 시키느냐로 경쟁할 게 아니라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대안학교 예술학교 직업전문대 등 진로를 여러 갈래로 만들어 교육 내용을 실질적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민영화가 서비스의 품질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의 초중고교 및 대학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지만 사립 중고교와 대학이 많은 한국보다 훨씬 개인별 소질을 키우는 다양한 교육을 한다. 우리는 아기 때부터 과외까지 하면서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앞에서 말 한마디 못 하지만 유럽에선 중고교 때 학교에서만 배워도 영어를 잘한다. 물론 유럽 언어들은 문법과 단어가 비슷해 학습하기 쉬운 점도 있지만…. 어린이 보육에 시장원리가 작동한다면 한국의 민간 어린이집이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인기가 높아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개인 소질 살리는 네덜란드 공교육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개인의 능력이 사장되고 창의성이 상실되는 천편일률적인 경쟁에만 매달려 있으면 우리의 미래도 얼어붙을 것”이라면서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찾아내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 가고 그것으로 평가받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꼭 성공하면 좋겠다. 모든 학생이 똑같이 언수외(언어 수학 외국어)를 달달 외고,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 획일적인 경쟁에서 벗어나야 교육이 산다. 그러려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이나 경제정책과 연관되는 이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사교육#교육정책#대입 전형#자율형사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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