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당 때 만든 인사검증이 불편한 새누리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4월 국회 연설에서 “고위공직자들이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되었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며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고 인사청문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7월 인사청문회법이 개정돼 모든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됐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0년 총선거 때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빅4’를 인사청문회 실시 대상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그해 16대 국회에서 다수당으로서 이한동 국무총리 서리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장에 세웠다. 2002년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들어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를 낙마시켰다.

요즘 새누리당이 고위공직자 인사청문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한나라당의 후신(後身)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그제 “후보자의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사전 비공개 회의와 문답 조사를 거쳐 도덕성을 검증하자”고 요구했다. 황 대표가 “지금까지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불거진 불필요한 후보자 흠집 내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 문제를 의식한 듯하다.

새누리당이 야당 시절에는 박 당선인부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며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에 열을 올리더니 이제 와서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알권리에 담장을 쌓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공직 후보자에 대해 재산 병역 위장전입 등 200여 개에 이르는 검증 항목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새누리당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후보자를 선택하고 지명했더라면 파문을 피할 수도 있었다. 박 당선인 측의 불투명한 인선 과정과 검증, 지나친 보안의식 때문에 벌어진 일을 인사청문회 제도 탓으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인사 검증 사태를 바라보는 새누리당의 인식에는 ‘우리 편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무조건 옳다’는 식의 진영 논리가 은연중 개입되어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나 진보 세력을 상대로 진영 논리의 폐쇄성과 부작용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박 당선인은 “그 시대의 관행들도 있었는데 40년 전 일도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차기 정부가 과거의 관행을 문제 삼지 말자는 식의 주장을 펴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 당선인의 이런 발언에 대해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충성 경쟁’을 벌이는 분위기도 경계해야 한다.
#야당#인사검증#새누리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