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박근혜 당선인이 벗어나야 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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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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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21년을 구금되거나 가택연금 상태로 갇혀 산 아웅산 수지 여사. 18년간 사실상 칩거 생활을 해야 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참 많이 닮았다. 그 기나긴 절망의 시간을 수지 여사는 불교식 수행으로 버텨냈다. 식료품조차 살 돈이 없던 고립무원의 시간들을. ‘어떻게 내가 행복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내 일기장에 쓸 수 있겠는가’라고 고백했던 박 당선인은 국선도와 요가로 마음을 다잡았다. 인고의 시간은 가녀린 두 여인을 아시아의 지도자로 성장시켰다.

아버지의 후광은 두 여인의 삶을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두 여인의 선택은 갈린다.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은 수지 여사가 두 살 때 암살됐다. 미얀마의 군부정권은 아웅산 장군을 ‘군부의 아버지’로 떠받들었다. 아웅산 장군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9명이 암살당한 7월 19일은 ‘순교자의 날’로 미얀마의 국경일이다. 그러나 수지 여사는 아버지를 영웅시하는 세력의 반대편에 섰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1988년 8월 8일 시작된 미얀마의 민중봉기는 이런 수지 여사의 신념으로 무장했다. 그것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였다.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1974년부터 1979년은 ‘공포의 클라이맥스’ 시대다. 절대 권력자의 주변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부패했고, 권력에 복종하기 위해 타락했다. 박 당선인이 권력의 심장부에서 체험한 권력은 ‘자유 열망에 대한 공포’였다.

절대 권력자가 충복의 총탄에 스러지고 충복들이 박 당선인에게 등을 돌린 것은 공포의 필연적 귀결인지 모른다. 이로 인해 박 당선인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지만 진짜 환멸해야 할 대상은 공포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공포를 극대화한 ‘절대 권력’이어야 했다.

아버지는 2인자를 두지 않았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꼼꼼히 기록해 둔 ‘엔마초’(비망록의 일본말)를 들춰 보며 인선에 활용했다. ‘힘의 균형’과 ‘깜짝 발탁’은 절대 권력을 다지는 용인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권력이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됐다.

박 당선인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시대의 권력자다. 절대 권력은 없고 레임덕은 있다. 권한은 작으면서 책임은 더 많이 져야 한다. 혁신과 통섭의 시대에 박 당선인이 몸서리쳐야 할 것은 배신의 공포가 아니라 절대 권력의 비극이다. 인선이 좀 새나가면 어떤가. 정책을 좀 수정하면 또 어떤가. 이건 신뢰의 문제라기보다 자신감의 문제다. 설득과 포용의 문제다. 아버지는 조국을 굶주림에서 건져냈다. 박 당선인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 모두가 행복해지자고 말한다. 그러려면 박 당선인부터 행복해져야 한다. 자신부터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그에게 가장 큰 공포는 아버지를 따라 성공해야 한다는 ‘맏이 콤플렉스’인 듯싶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 당선인#아웅산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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