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산타클로스와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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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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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다. 이제 스물을 훌쩍 넘긴 연년생 두 아들에게 물었다. 산타클로스가 실재한다고 믿은 게 언제까진지를. 첫째의 대답에 코가 찡해졌다. 중학 2학년 때까지란다. 예상을 훨씬 상회한 ‘장기간’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초등학교 6학년―이건 둘째의 대답―정도였는데…. 이런 아이들 대답에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크리스마스마다 내 나름으로 열심히 해 온 어설픈 산타 노릇이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으니.

이건 내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된 위대한 유산이다. 내 어린 시절인 1960년대는 모두가 가난해 살림살이가 팍팍하기만 했던 어려운 시대였다. 평범했던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렇게 궁핍한 중에서도 두 분은 좀 특별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를 그냥 넘기지 않아서다. 성탄절 전날이면 늘 긴 양말을 마련해 주시고는 머리맡에 두고 잠들게 하셨다. 다음 날 아침 거기 가득 담긴 선물에 환호한 것은 물론이고. 그때의 행복한 기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40년도 훨씬 지났건만 어제처럼 생생하다. 나의 산타 노릇은 거기서 비롯됐다. 그리고 무려 10년 이상 쉼 없이 계속됐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다. 그리스도(구세주)가 ‘아기예수’ 모습으로 태어난 종교적 환희는 접어 두고도 말이다. 그 핵심은 ‘크리스마스 매직(Magic)’이라고 불리는 ‘마법과 같은 변화’다. 너나없이 굳게 걸어 둔 마음의 빗장을 풀고 평소 잊고 지낸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자기 것을 나누고 교감하는 열린 마음이다. 그런 마법과 같은 변화엔 유래가 있다. 꼭 200년 전 태어난 찰스 디킨스(1812∼1870·영국)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1843년)이다.

디킨스의 어린 시절은 지독히도 고통스러웠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 속에 성장했다. 그런 그에게 이웃의 관심은 어둠 속의 등불만큼이나 간절했을 터. 그게 이 작품을 탄생시켰고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잘 알다시피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은 탐욕과 이기심의 화신이다. 그런 그가 유령에 이끌려 보게 된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은 ‘구두쇠(screw)’와 ‘사기꾼(gouge)’을 합성한 자기 이름만큼이나 부정적 모습이다. 소설의 주제는 그 모습에서 비롯된 자각과 통렬한 반성으로 크리스마스 매직 그 자체다.

오늘도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클로스 중앙우체국에는 산타 앞으로 쓴 편지가 전 세계에서 답지하고 있다. 한 해 50만 통, 우리나라에서 온 것도 2만 통을 헤아린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산타를 믿는다 함은 곧 크리스마스 매직을 기대함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엔 희망과 미래가 있다. 할리우드 무비 ‘34번가의 기적’에선 산타의 존재 유무를 법정에서 가리는데 거기엔 이런 대사도 등장한다. ‘아이들이 믿는 한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다’라는.

크리스마스 매직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목표액 50억 원(지난해 48억 원)을 상회하리라는 구세군 자선냄비인데 대선 열풍에 휩쓸려 모금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를 씻어 준 성숙한 국민 모습이 그것이다. 또 하나 매직을 원한다면 52 대 48로 나뉜 국민을 화합시킬 성숙한 정치다. 올 크리스마스엔 그걸 고대하며 우리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산타클로스#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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