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주 ‘시대착오 인종범죄’ 방치하면 야만국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호주에서 올해 들어 4명의 한국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에 체류 중인 조모 씨는 25일 밤 브리즈번의 집 근처에서 백인 2명에게 둔기와 주먹으로 마구 얻어맞았다. 호주인들은 휴대전화기를 빌려달라고 한 뒤 들고 달아나려다 조 씨가 막아서자 폭행했다. 지난달에는 시드니에서 30대 회사원 김모 씨가 4, 5명의 괴한이 휘두른 골프채에 맞아 두개골에 금이 가고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4차례의 사건이 모두 아시아인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데다 일본인과 중국인을 겨냥한 폭행도 이어져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범죄로 분석된다.

그러나 호주 정부 관계자들은 “인종차별이 아닌 단순 폭행 사건”이라며 사건을 축소하고 있다. 조 씨의 신고를 받은 호주 경찰은 “왜 밤늦게 돌아다니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아시아인들은 멍청하고 어리석다”며 전체 아시아인을 모독하는 발언까지 했다. 호주가 1970년대까지 유지했던 백인 우선 정책인 백호주의(白濠主義)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민들은 “최근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호주 경찰의 축소 수사와 언론의 외면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호주는 올해 수교 51주년을 맞는다. 해마다 2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호주를 방문하고 있다. 호주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은 3만 명에 이른다. 호주가 한국을 우방으로 생각한다면 집단 폭행을 중대범죄로 다뤄야 한다. 한국인들이 호주를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게 되면 한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이 발길을 돌리게 되고 양국 관계는 심각하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2009년 호주에서 인도 유학생이 백인 남성의 칼에 찔린 것을 비롯해 인도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 뒤 호주에 오는 인도 유학생이 70%나 줄어들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지난달 한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 5개국과 미국을 호주의 교역과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6대 전략 파트너라고 발표했다. 호주가 자국에서 벌어지는 아시아인 상대 범죄를 모른 체하며 아시아와의 협력을 외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호주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국가 이미지가 추락할 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호주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호주#인종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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