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4>여론조사로 대선후보를 뽑는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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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만약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까? 남북통일이 이뤄질 것인가? 남자가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될까? 65세 이상이 아니어도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을까? 국민투표로도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이 의외로 쉽게 풀릴지 모른다. 이른 시일 내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여론조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한국을 보면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결정도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 여론조사로 정부 정책이나 선거를 ‘결정’한다는 사례를 찾지 못했다. “여론조사에 미쳐(狂)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다”라는 미국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이란 질문은 오로지 상상의 유희일 뿐이다.

어느나라에도 유사한 사례 없어

이번 미국 대선 투표일 아침, 뉴욕타임스에 여론조사 분석 칼럼을 연재하는 네이트 실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확률이 90.9%이며 50개 모든 주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이 오바마-롬니의 백중세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그의 전망은 적중했다. 2008년에도 오바마 당선을 점쳤고, 이번 선거 기간 내내 오바마 우세를 예언했던 서른네 살 실버의 여론조사 실력에 미국 학계와 언론계는 혀를 내둘렀다. 일부 언론은 실버가 ‘이번 선거의 승자’라고 선언하거나 이번 대선을 ‘실버의 선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날마다 여론조사 결과에 울고 웃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에 학자들까지 가세해 대선 이후 실버의 정치 편향성과 분석 방법의 문제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자 ‘아메리카 저널리즘 리뷰’의 편집장인 램 리더는 “다음 선거에는 돈 많이 들고 시끄러운 선거 운동은 잊어 버려라. 그냥 정당들은 후보를 선출하기만 하고 실버가 승자를 선언하도록 하라”라고 제안했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일

아무리 백발백중 예측률을 자랑하는 조사기관이 있다 하더라도 미국 사회가 여론조사로 대통령은커녕 후보조차 결정하게 놔 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오죽하면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리더는 여론조사의 노예가 되어 버린 미국 정치와 언론 풍토에 따끔한 일침을 놓은 것이다.

한국은 예외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선후보 여론조사가 벌어지며, 그것을 용납하는 곳이 한국이다. 정부의 어떤 정책도 그렇지 않은데 대통령 후보는 여론조사로 결정된 역사가 우리에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은 10년 전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했다. 이번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도 여론조사로 후보를 판가름할 모양이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 유독 한국에서 두 번이나 벌어지는 것은 정치인들의 놀라운 상상력 때문일까? 아니면 여론조사의 본질에 대한 무지의 결과일까?

여론조사는 민심의 거울이라고 한다. 민주주의 정부와 정치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 건강한 민주주의의 정수(精髓)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여론조사의 목적은 정확한 유추를 하기 위해서다. 정부나 정치인들은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하기에 여론조사가 필요하다. 여론조사는 결정 수단도, 투표의 대체물도 아니다. 결정을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여론조사가 시작된 지 200년이 다 되도록 결정을 위한 참고자료에 머물러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보완되어야만 하는 미완성 기술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고질적 결점은 조사 표본의 오류다. 1936년 미국의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대선 직전 1000만 명에게 카드를 발송해 230만 명의 응답을 받은 결과 공화당 후보 앨프 랜던이 현직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57% 대 43%로 이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투표 결과는 루스벨트가 61%를 득표해 압승이었다. 이전 네 번의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맞추었던 ‘다이제스트’로서는 일대 망신이었다. 이 잡지는 대체로 1000명 안팎을 조사하는 요즘 여론조사와는 달리 엄청난 수의 유권자를 조사하고도 실패했다. 그만큼 국민 전체를 고루 대표하는 조사 표본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 보완이 이뤄졌다고는 하나 정확한 표본을 만드는 것은 여론조사의 영원한 숙제다. 또 여론조사는 질문 내용이나 질문자 유도에 따라 대답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태생적 편견을 안고 있다. 질문에 아예 대답하지 않는 무응답이 많은 것도 문제다.

디지털 시대는 여론조사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휴대전화는 유선전화처럼 전화번호부가 없기 때문에 조사 대상자 추출이 불가능했다. 최근 RDD(Random Digit Dialing) 기법으로 그것이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대체로 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아 더 많은 전화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외롭거나 지겨운 사람, 가난하거나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만 조사에 응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 여론조사의 참 모습이라는 것.

다른 나라에서 여론조사가 감히 후보나 대통령을 결정하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년 역사 동안 여론조사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성공 못지않게 수많은 예측 실패를 경험했다. 4월 총선에서 77억 원을 들인 한국 방송 3사의 공동출구조사가 틀렸다. 미국도 이번 대선에서 실버 이외의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 맞지 않았다. 여론조사를 통해 마치 로또 숫자를 맞추듯 예측의 스릴은 느낄지 몰라도 그것은 여전히 ‘뛰어난 과학이기보다 정밀성이 떨어지는 위험한 기술’이다.

단일화란 코미디가 낳은 비극

무엇보다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결정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직접·비밀선거의 원칙을 훼손한다. 국민의 기본권과 정치적 사생활을 침해한다. 왜 투표소를 만들며, 투표장에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가져가도록 하며, 기표소에 장막을 두르는가? 헌법이 보장하는 직접·비밀선거를 위해서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고 추적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전화기를 통해 후보를 뽑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른 나라 정치인들이 상상력이 부족해서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도를 지키기 위해서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어설픈 상상력이 한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단일화란 희대의 코미디가 낳은 비극이다. 여론조사의 노예가 될 단일화를 이제라도 당장 그만두고 떳떳하게 대선에 나서는 길이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두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대선#여론조사#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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