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송형곤]약값 리베이트 막기, 순서가 바뀌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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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의약분업 시행 이후 정부는 정책적으로 복제약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80%로 높게 책정했다. 국내 제약 산업을 보호하고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장려한다는 미명하에서다.

정부의 높은 복제약 가격 책정은 제약사에 높은 이윤을 가져다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약시장을 왜곡시켜버렸다. 복제약만 제조·판매하는 중소 제약사들이 난립해 제약시장을 어지럽혔으며, 대형 제약사들 또한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이윤을 신약 개발에 쓴 게 아니라 자사가 만든 복제약을 판매하기 위한 판촉 수단, 즉 리베이트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상황은 민간 자본에 의해 병원을 경영해야 함에도 의료수가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병원 경영난에 시달린 의사들에게 이 같은 리베이트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리베이트는 의사들의 요청이 아닌 정부의 오판으로 인한 제약 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난립된 중소 제약사들의 경쟁도 사실상 리베이트를 부추겼다. 일부 제약사는 아직까지 리베이트를 다른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한 주요한 영업 무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일각에서는 리베이트를 건강보험재정 지출의 원흉이라 주장하며, 의사와 제약사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만들어 도덕적으로 매도해버렸다. 리베이트가 일방적으로 높게 책정해 버린 제약사의 복제약 가격 이윤에서 지출되는 사실을 모르는 체하면서 말이다.

리베이트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리베이트가 도덕적으로 옳다는 게 아니다.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도덕적 문제로만 리베이트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접근 방식은 의사들의 처방을 다국적 제약사로 향하게 했다. 매출 인하와 약값 인하라는 타격을 동시에 받은 국내 제약사는 경영 압박이 더해졌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여력마저 상실할 정도로 경쟁력은 저하되어 버렸다. 리베이트를 없애고 제약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았지만, 실행 순서가 뒤바뀌면서 국내 제약 산업은 더욱 위축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지금과 같은 방법이 아닌 R&D 투자비용의 절대 기준을 설정하고 유예기간을 둔 후, 이에 못 미치는 제약사는 과감하게 큰 폭으로 약값을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국내 제약사의 인수합병(M&A)을 유도하고(국내 제약사는 생존을 위해 활발한 M&A를 벌이는 다국적 제약사와 달리 대부분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가족들이 경영하는 가족회사다), 자연스러운 약값 인하와 리베이트 소멸을 유도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제약사들의 경쟁력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외면했기에, 1만 명의 제약인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외친 절규도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집단의 목소리로 흘려버렸기에 이런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리베이트를 없애기 위해서는 리베이트가 소멸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구조를 그대로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봐야 국내 제약 산업의 경쟁력 추락을 막을 수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도덕적 때리기를 중단해야 한다. 가족경영체제의 제약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체질 개선을 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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