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전승훈]아마존 밀림 속의 펭귄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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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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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문화부 차장
전승훈 문화부 차장
최근 전자책 단말기를 활용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퇴근할 때 심심풀이로 읽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서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와 수전 콜린스의 ‘헝거게임’을 다운로드했다.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과 화장실 등에서 틈틈이 읽었는데도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 남들은 내가 태블릿 PC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주변의 시선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의 전자책 매출액은 2007년 킨들 첫 출시 이후 매년 400% 정도씩 성장해왔다. 올해 아마존은 종이책 100권을 팔 때, 전자책을 114권이나 팔았다. 국내에선 전자책 붐이 아직 미미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전자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영국 피어슨그룹의 출판사 펭귄과 독일 베텔스만그룹의 랜덤하우스가 합병을 발표했다. 전세계 출판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출판사의 탄생이었다. 이번 합병은 전자책 붐이 얼마나 빠르게 기존 출판산업을 격동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35년 창립된 펭귄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출판사다. 기하학적 수평선 무늬와 펭귄 로고, 장르별 컬러로 표시하는(오렌지는 소설, 그린은 범죄물, 블루는 자서전, 핑크는 여행서적 등) 표지 디자인은 펭귄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랜덤하우스는 올해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전 세계에서 40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쳤다. 펭귄과 랜덤하우스는 이번 주 미국 도서시장에서 톱 순위 25위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 중 10여 개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강력한 브랜드와 베스트셀러를 갖춘 두 회사가 경영난도 아닌데 왜 합병해야 했을까.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쇄, 창고, 물류, 생산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절감과 콘텐츠 시너지 효과는 클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전자책 협상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아마존과의 한판 승부를 위한 출판계의 몸집 키우기로 봐야 한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은 종이책을 팔면서도 각종 가격 할인 정책으로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의 문을 닫게 했고, 출판사들의 경영을 어렵게 했다. 앞으로 전자책 시대를 맞아 아마존, 애플, 구글 등 거대 온라인 기업은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e-출판’까지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시장에서 출판사의 역할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출판사는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펭귄랜덤하우스가 아무리 공룡이라고 해도 매출액은 아마존의 6%, 구글의 8%, 애플의 2%에 불과하다. 하퍼 콜린스, 아셰트, 맥밀런, 사이먼&슈스터 등 남은 거대 출판사들까지 연합전선을 펴지 않는 한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온라인 기업을 이기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판사가 무작정 몸집을 키우는 데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펭귄은 결국 정체성을 잃게 될 것” “거대 출판사가 작가들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판매로 인해 실질적으로 도서정가제가 무너져 출판시장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전자책 판매방식과 가격 설정에 대한 시장의 합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출판사들도 언젠가는 아마존, 애플, 구글같은 글로벌 기업이나 KT, SKT 같은 통신대기업과 전자책을 놓고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 콘텐츠의 주춧돌이 되는 출판시장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대선 기간인데도 후보자들이 문화정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아쉽게도 들리지 않는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아마존#펭귄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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