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안철수 현상’과 야권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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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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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를 유력한 대선후보로 만들었지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낳은 것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이 출현한 2011년은 글로벌 앵거(분노)의 해였다. 2011년 가을, 미국과 유럽에서는 99%의 시민들이 1%의 탐욕스러운 금융 기득권자들에 대한 분노를 ‘월가 점령’과 같은 연좌농성으로 표시했으나, 한국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선거에 참여해 정부를 점령하려 한 평화적인 대의민주주의적 ‘민란’으로 표출했다.

민란은 2008년에도 있었다. 시민들은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의 실체에 대한 실망, 혐오, 경멸로 ‘촛불시위’라는 거리에서의 민란을 일으켰으나 ‘관군’에 진압되었다. 그런데 2011년 가을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선은 시민들에게 다시 민란의 장을 제공했다. 한국의 시민들은 2008년의 민란 실패를 통해 민주주의 아래에서 민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밖에 없다는 것을 터득하였고, 선거민란을 이끌 장수를 찾는 과정에서 안철수를 발견하였다.

실상 2011년 민란을 이끌 장수로 선택된 시민 지도자는 안철수가 아니라 박원순이었으나, 여론조사에서 50%의 지지를 받던 안철수가 5%의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통 큰 자기희생을 보여주면서 시민들 사이에 안철수야말로 강고한 기득권 세력과 선거의 여왕 박근혜를 이기고 선거민란을 성공시킬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 후 ‘99%’의 시민들이 모든 소망을 안철수에게 투사하는 ‘안철수 현상’이 출현하였고, 안철수 현상은 2012년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되었다. 안철수 현상은 4·11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하면서 더욱 강고해졌고 안철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안철수 메시아 대망론’까지 나왔다.

단일화때 후보간 ‘원샷 담판’ 안돼

그러나 정작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에 화답하지 않고 신비주의를 유지함으로써 시민 특히 2030세대의 미륵불 또는 메시아가 되었다. 안철수는 대선 출마에 대해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만 짓고 있었지만 안철수 현상은 시들지 않았고, 대선후보 중 선두를 달렸다. 여기에 기성 정치권이 긴장했고 자기 쇄신과 개혁에 들어갔다.

박근혜 후보는 비리, 부패 측근들을 척결하였고 스스로 아버지 박정희의 쿠데타, 유신,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하였으며, 문재인 후보는 더 긴장해 친노 핵심 세력을 스스로 선대위에서 퇴장시켰다. 양당이 모두 경제민주화, 더 풍성한 복지 제공을 약속한 것은 물론이다.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 한국의 정치개혁을 추동하고 보수세력까지 경제민주화를 약속하게 했다.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안철수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통해 대선 출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양새를 갖춘 뒤 9월 19일 출마선언을 했다. 출마선언의 핵심 주제는 정치개혁이었다.

그는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는 말로 자신만이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처럼 고질적인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는 민주통합당에 실현하기 어려운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야권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하듯이 독자적으로 12월 19일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고 개혁하기 위해 출마하였고, 따라서 승패에 관계없이 대선 레이스를 완주함으로써 기성 정치권으로 하여금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개혁하게 하는 쇠망치 역할을 하겠다는 논리로 나 홀로 완주를 변명할지 모른다.

그런데 안철수가 알아야 할 것은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 안철수가 대선출마까지 하게 된 것은 국민이 만들어준 ‘안철수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출현시켜 준 국민의 소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출마선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치개혁이 국민의 소망이라면 최대의 정치개혁은 정권교체이고, 그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2012년에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1% 대 99%의 양극화 사회를 낳은 청년실업, 교육양극화, 중소하청기업 쥐어짜기, 골목상권 몰락 등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40%를 넘나드는 콘크리트 고정표를 가진 박근혜를 물리치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두 야권 후보가 반드시 단일화해야 한다.

국민의 뜻 묻는 과정 있어야

안철수가 자신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정권교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대선을 나 홀로 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 없이는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국민통합 같은 국민의 요구와 소망을 해결할 수 없다.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준 국민에게 보답해야 한다면 안철수는 반드시 문재인과의 후보 단일화를 주도적으로 성사시켜 정권교체의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

단일화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보 간 원샷 담판, 야권 중진 원로 그룹의 원탁회의를 통한 중재 등은 안 되며, 반드시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묻는 과정이 있는 후보 단일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단일후보가 국민적 정통성을 획득하고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철수#단일화#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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