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목 졸라 표 얻기’의 후유증도 생각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헌법에 규정된 경제민주화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기 위한 과제다. 하지만 연말 대통령선거에 앞서 정치권이 표를 노리고 대기업 때리기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벗어나 국가적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민생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먹고 산다. 경제민주화의 초점을 대기업 때리기에만 맞추게 되면 경제는 위축되고 서민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대기업이 무너지면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들의 소비에 의존하는 영세 상인과 중소기업인들의 생활도 팍팍해질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신속하게 벗어나고 국가신용등급이 일본보다 우위에 선 것은 해외시장에서 선전한 대기업의 성과와 탄탄한 신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12일 대통령 직속으로 재벌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전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재벌이 경제민주화의 걸림돌”이라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도 3년 내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재벌개혁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측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개선과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포함한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중앙선대위원회 총괄본부장은 부유세 신설의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제도는 프랑스 독일 등 평등의식이 강한 유럽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도 채택하지 않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부유세는 땀과 노력으로 얻은 대가에 세금을 과중하게 매겨 자본과 인력을 몰아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유럽국가에서도 커지고 있다. 안 후보의 재벌개혁위원회 구상은 시장과 정책에 혼선을 빚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옥상옥(屋上屋)의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의 폭을 크게 넓힐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주지 않는 기득권 노조의 횡포를 없애는 것도 경제민주화에 해당된다. 관료들이 자신들의 권한 확대를 위해 쏟아내는 부당한 규제를 막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경제민주화의 본령(本領)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 라파엘 아미트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한국의 재벌과의 소모적 전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선후보의 대기업 때리기와 같은) 인기 영합적 움직임이 역효과를 부를 것’이라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대기업의 목을 조르고 나라의 기둥뿌리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민주화#대기업#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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