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분노하라, 더 많이!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개인비서와 같은 일을 한다, 우리들은 노예다, 현금이나 상품권을 드린다, 술자리 참여를 강요받는다, 여자는 치마 입고 노래해야 점수 준다, 선배들이 시키는데 어떻게 거절하나….

어디에서 벌어진 일일까. 공무원과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군대 상관과 부하?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 중고교의 일진과 피해자? 11일자 조간신문들이 서울대 인권실태라고 보도한 내용이다.

“관행” 이유로 비리-불편 감수

후배 기자에 따르면 서울대는 인권센터 설립기념 심포지엄(10일)에서 이런 조사결과를 발표한다고 30분 전에야 취재진에게 알렸다. 주최 측이 보도자료를 준비하지 않아 기자들이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보고 일일이 옮겨야 했다.

요약본을 보고 놀랐다. 폭력(구타 왕따 음주강요 폭언 욕설)과 차별(성 외모 출신 연령 학과에 따른)과 성희롱(또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이 10∼30%로 나왔다. 국내 최고의 대학, 지성과 학문의 전당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지나치게 준비 안 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대학원생은 법학 57%, 치의학 52%, 인문대 51%였다. 교수가 개인사정으로 수업을 자주 변경하고(26.8%), 특정수업의 수강을 강요하거나 제한했다는 응답(17.1%)은 오히려 심각성이 덜 느껴질 정도였다.

인권센터는 “서울대의 법인 전환 이후 대학 본연의 역할과 새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인권센터를 설립했다. 학내 구성원 인권실태 및 침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일회성이거나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전체적으로는 학생의 70% 이상이 대학과 자신의 인권 상황이 좋다고 응답했다고 인권센터는 설명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정적 응답 비율이 30%라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심층면접에서는 이런 의견이 나왔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는 더 심했고 교수들은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니까. 학교가 보호해주겠다고 했는데 학생들은 코웃음 친다.”

절대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실망은 의료계 역시 마찬가지다. 동아일보가 ‘건강신문고’라는 새 코너에 ‘회진, 좀더 친절하면 안되나요’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8일자 A26면을 보고 환자들의 격려가 쏟아졌다고 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전했다.

진료현장은 의료진보다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못된 관행을 지적한 기사에 공감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환자들의 메일 중에서 ‘진짜 항상 생각하던 기사’ ‘가장 유능한 의사는 환자의 병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의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

프랑스 외교관 출신인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라는 책을 냈다. 2009년 연설을 토대로 프랑스에서는 2010년, 한국에서는 작년에 출간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나고 주유엔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지냈다.

그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면서 프랑스 사회에 분노하라고 호소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면서, 인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면서.

한국은 어떤가. 관행과 일상이라는 이유로 계속되는 불편 비리 부패 모순.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아직도 계속되는 건 아닐까. 유권자와 소비자가, 학생과 환자가 너무 조용하니까. 그렇다면 분노해야겠다. 지금보다 많이.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songmoon@donga.com
#서울대#인권센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