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석환]한글자판의 기계화 이끈 공병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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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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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환 국가컴퓨터자판표준위원회 위원장
조석환 국가컴퓨터자판표준위원회 위원장
세종 28년(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66년이 됐다. 필자는 한글 덕분에 40여 년을 산업시대 한글 타자기와 컴퓨터 한글자판 배열 연구에 몰두해 왔고 지금은 ‘국가컴퓨터자판 표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1960년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됐던 세벌식 타자기를 개발해 한글의 기계화에 앞장섰던 공병우 박사(1906∼1995)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그의 혜안(慧眼)과 열정에 탄복한다.

필자는 1975년 한 전문지에 ‘한글타자기 자판배열은 어디로?’라는 글을 연재한 일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본 공병우 박사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자택으로 나를 초청했다. 그해 성탄절 전야에 만난 우리는 한글 타자기 자판에 관해 오랜 대화를 나눴다. 공 박사는 내게 “머지않아 도래할 정보화 시대에 사용될 컴퓨터는 속도가 빠른 세벌식 자판이 제격”이라며 “젊은 조 선생이 세벌식 자판을 더 발전시켜 정보화시대에 반드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남과 북이 극도의 냉전으로 대치하는 정국에도 남북한의 컴퓨터 한글 자판을 통일해야 한다며 이 일에 힘써 달라고 부탁하던 공 박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안과 의사로 193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안과 전문의원을 열었던 그는 돈을 받지 않고 가난한 환자를 치료해준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타자기를 개발해 시각장애인 타자경시대회를 개최하여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러 넣어 주던 그였다. 그날 밤 12시 무렵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 박사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필자는 편리한 한글 자판을 만들어 일반인에게 보급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느끼며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공 박사가 개발한 세벌식 한글 자판은 글쇠에 자음과 모음 외에 받침까지 추가되어 있어 ‘자음+모음+받침’으로 이뤄진 한글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자판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2벌식 자판에 비해 속도도 훨씬 빨라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컴퓨터에 걸맞은 자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1969년 한글 자판 표준화 작업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한글 자판을 2벌식으로 일원화했고 1982년엔 정보처리(컴퓨터) 자판을 2벌식으로 통일했다. 이후 2벌식 컴퓨터 자판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 자판의 표준으로 2벌식이 채택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980년대 프린터의 기능이 떨어져 세벌식 자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영향도 있었다. 당시에는 세벌식 자판으로 작성한 문서를 출력하면 빨랫줄에 다른 크기의 옷들이 걸려 있는 것처럼 글자 모양이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린터의 성능이 좋아져 세벌식 자판으로 작성해 문서를 인쇄해도 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많은 사람이 익숙해진 2벌식 자판을 갑자기 세벌식 자판으로 교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미국처럼 두 가지 자판을 함께 표준으로 삼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미국은 현재 영어 타자기나 컴퓨터 자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쿼티 자판을 표준으로 삼고 있지만 쿼티 자판보다 더 능률적이라고 알려진 드보락 자판도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작년에는 국민의 편의성을 위해 모바일 정보기기 한글 문자판의 표준화를 시도해 성공했다. 2벌식 자판보다 빠르고 능률적인 세벌식 자판을 제2의 표준 자판으로 정하는 것도 국민의 편의성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라는 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조석환 국가컴퓨터자판표준위원회 위원장
#조석환#자판#공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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