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중국은 지금 和를 따르나, 화를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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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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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당신 혹시 일본 사람인가?”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 대학가 식당에서 조선족 교수와 점심을 먹을 때 지배인이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외국어로 대화하니 일본인인가 싶어 쫓아내려고 한 것이다. 식당 문 앞에는 ‘일본인에게는 서비스를 안 합니다’라고 중국어와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14일 베이징 동아일보 사무실 근처 한 식당의 배달용 오토바이 번호판에는 ‘개와 일본인은 접근 금지’라고 쓰여 있다. 100여 년 전 일본 등 서구 열강의 조차지였던 상하이 황푸(黃浦) 강변의 공원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두고 격렬히 충돌하면서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성난 중국인들은 무고한 일본인을 위협하고 일본 기업이나 상점을 습격한다. 주중 일본대사의 차를 강제로 세워 일본 국기를 빼앗는 일마저 일어나는 마당이니 중국에 사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느끼는 불안은 상당하다.

게다가 18일은 중국인들이 ‘국치’로 기억하는 만주사변 발발일이다. 1931년 일본이 중국 침략을 시작한 만주사변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해마다 이날과 12월 13일 난징대학살(1937년) 기념일에는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이 솟구쳤는데 올해 재중 일본인들은 더욱더 몸을 사려야 할 것 같다.

중국인의 반일감정은 한국인과 비슷하다. 과거 ‘일본제국’의 침략과 수탈 등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태도 탓이다. 다만 중국인이 가진 반일 감정의 깊이나 분노의 분출 양상은 한국보다 훨씬 깊고 격렬하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의 정통성을 항일 민족 해방 전쟁에서 찾고 있다. 중국의 국가(國歌)는 항일의용군이 불렀던 ‘의용군 행진곡’이다. 요즘 주중 일본대사관 앞 반일 시위대는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라는 국가를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이 시간에도 중국의 수많은 TV 채널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공산당 열사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내용의 시대극이 전파를 타고 있다. 각급 학교 학생들은 항일 혁명 성지를 찾아 수치스러운 역사를 배우고 설욕을 다짐한다.

이런 묵은 반일감정에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은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중국 국력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중국인 열 명이 일본인 한 명을 못 당한다”라며 자조했다. 하지만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지금 이 같은 자괴감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현재 중-일의 영유권 분쟁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마주 달리는 듯하다. 한국인으로서 중국인의 반일 감정에 대해 이해 가는 대목이 적잖다. 하지만 일부 중국인들의 사적인 분풀이는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다. 국가 간의 정치적 외교적 역사적 갈등이 상대방 국민에 대한 폭력이나 모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중국 정부와 언론이 뒤늦게 자국민에게 ‘이성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사악하다” “본때를 보여 주겠다” 등 거친 표현 속에 이런 목소리는 그다지 들리지 않는다.

서방과 주변 국가들이 ‘중국 위협론’으로 불신의 눈초리를 보낼 때마다 중국은 “예로부터 ‘화(和)’를 추구해 왔다”며 “오히려 중국을 위협하는 근거 없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그만두라”고 불쾌감을 표시해 왔다. ‘중국 위협론’에 대한 중국의 반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가 간의 격렬한 갈등 상황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중국#일본#반일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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