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소영]한 명의 천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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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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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애플과 삼성의 휴대전화 판매 전쟁이 법정에서의 소송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삼성과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각각 32.6%와 16.9%로, 합쳐서 세계 시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이 이 정도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20년 전만 해도 TV, 캠코더, 비디오 등 고급 가정용 전자 제품의 대명사는 일본의 소니였다. 필자가 미국에서 생활하던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삼성, LG 등 한국 제품들은 헐값에 팔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상점을 방문해 보면 삼성과 LG의 제품들이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다.

애플의 급속한 성장 또한 놀랍다. 1976년에 설립돼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 컴퓨터 등을 개발하며 성공을 거두었으나 1980년대 중반 스티브 잡스가 떠난 이후 점차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지만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세계 최정상의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기업은 지난 10∼20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그 주요 동력은 다르다. 애플의 고속 성장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 이루어졌으며 상당 부분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에 의존했다.

천재 적지만 바보도 줄어든 한국

반면 삼성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는 아닐지라도 영재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한국 제1의 기업으로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장이므로 우수한 인재들을 뽑을 수 있다. 물론 애플도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겠지만 한국에서의 삼성전자처럼 독보적인 위치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두 기업의 차이는 미국과 한국의 교육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교육은 점진적으로 평준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그런 변화 속에서 창의력이 우수한 천재를 길러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쉬운 것을 반복 학습하고, 쉬운 문제를 틀리지 않는 연습을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저하될 것은 자명하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수학, 영어, 과학은 물론이고 심지어 독서, 미술, 음악, 연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창의력 학원들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학원들은 대부분 기존 학원이 포장만 달리한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창의력은 판박이 교육 같은 학원 교육으로 배울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불안한 마음에 학원에 의존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창의력을 발휘해 본 적도 거의 없고, 창의력이 어떤 것인지조차 잘 모를 것 같은 학원 강사들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제고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과목을 골고루 잘해야 하는 현실 또한 천재가 나오기 어려운 여건이다. 5과목에서 골고루 상위 10%에 속하는 것이 본인의 순탄한 대학 진학을 위해 중요하지만, 4과목은 하위권이라도 한 과목에서 상위 0.01%에 속하는 것이 사회에 더 중요한 공헌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평준화 교육, 반복 학습, 깊이 없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학습이 한국 사회에 도움을 준 면도 있는 것 같다. 천재를 길러내기는 어려워졌지만 많은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인적 자본을 갖추게 된 면도 있다. 천재도 없지만 바보도 거의 없다. 천재는 없지만 상당한 수준의 인재는 상당히 많다. 이러한 인적 자본들이 한국 사회의 효율성 제고에 공헌했다.

예를 들어 미국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겠지만, 일상생활이 느긋하다 못해 어떤 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매장들을 방문하면 점원들이 숫자 계산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시간이 한국의 2배 정도는 걸린다. 점심시간에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한국에서는 이미 먹고 나갔을 시간인 30분 정도 후에야 음식이 나온다. 이러한 면이 전부 교육 때문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한국의 대다수 국민은 보다 효율적인 삶을 감당할 능력이 생겼고 결국 효율성 증가에 공헌한 측면이 크다.

창의력 풍부한 인물 키워내야

반면 미국의 경우 세계를 이끌어가는 천재도 나왔지만 평균적으로 낮은 인적 자본 수준으로 인해 비효율성이 나타나게 된 측면이 있다. 한국의 평균적으로 우수한 인적 자본은 한국의 고속 성장에 상당한 공헌을 해왔다. 한국은 이제 후발 주자로 선진국을 모방하는 단계를 벗어나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은 이제 평균적으로 우수한 국민, 우수한 많은 인재뿐 아니라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들도 길러내야 한다.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창조적인 천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동아광장#김소영#잡스#창의력#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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