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경주에 관한 ‘네 가지’ 식 오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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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네 가지’를 보자. 무미건조, 촌놈, 단구, 비만…. 시쳇말로는 하나같이 ‘루저’다. 그러나 이에 맞선 그들의 항변은 투사적이다. ‘나도 인기남이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에 시골이 웬 말이며 키만 보지 말고 얼굴도 좀 봐라, 뚱뚱한 게 죄냐’고. 여기 토 달 사람은 없다. 이런 ‘비(非)호감’ 정서가 부화뇌동과 오해, 선입관에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경주(慶州)란 여행지가 딱 그렇다. 최고의 유적지라지만 이런 네 가지 식 오해와 선입관으로 ‘인기 꽝’ 여행지로 전락해서다. 나는 안다. 경주 여행을 권할 때 반응이 어떤지. ‘거기 말고 딴 데는…’인데 그 이유도 잘 안다. 한 번쯤 가봤을 테고 다시 찾아가더라도 그리 새로울 리 없으리라는 지레짐작이다. 여행이란 게 안 가본 데부터 찾는 게 우선이고 또 경주에 가본 적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흥미라고는 눈곱만치도 느낄 수 없던 따분한 수학여행이었을 게 분명하니까.

경주가 이렇듯 비호감이 된 데는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크다. 물론 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정도도 보문관광단지 개발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까지 들인 그간의 노력 덕이므로.

그러나 단순개발사업에 그쳤다는 비판만은 피할 길 없다. ‘천년고도(千年古都)’라는 경주관광의 핵심가치를 증폭시켜 미래성장 동력으로 삼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더 안타까운 건 관료들의 안이한 자세다. 예산 없이는 어렵고 뭔가 건설해야만 가능하리라는 ‘물량주의’다.

그런 경주이기에 이 ‘사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은행이 며칠 전 시작한 ‘경주 1박 2일’ 리더연수 프로그램 ‘신라천년의 비밀, 경주를 만나다’이다. 지난해에 지점장 부인 430여 명을 참가시킨 ‘신라여성을 만나다’의 후속인데 올해는 김종준 은행장을 포함해 임원 지점장 등 850명이 참가(12회)하는 규모로 발전했다. ‘기피여행지 1번’의 경주 이미지를 단박에 바꿀 상징적인 변화다. 그런데 배경을 살피니 ‘관광의 별’을 수상(2011년)한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이 있었다. 창덕궁 등 전국 20여 개로 늘어난 ‘달빛기행’을 개발(1994년)한 곳으로 하나은행의 파트너가 되어 리더연수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여행의 성가에는 은행도 놀랐다. 만족도가 ‘99.7%’에 이르러서다. 그 핵심은 뭘까. ‘재미와 감동’을 끌어낸 ‘키워드’ 중심의 체험이었다. 따분하다고 생각됐던 유적도 접근방식을 바꾸니 몰입대상이 됐는데 경주 최부자 댁이 그랬다. 고택에선 육훈(六訓)을 통해, 작은 종갓집 ‘요석궁’(식당)에선 과객에게 내주던 음식을 맛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을 배웠다. 최초 여왕인 선덕여왕도 그녀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녹차를 들며 국악을 감상한 서악서원에선 살아 숨쉬는 전통문화를 피부로 체험했다. 한밤중 등을 든 채 돌아본 첨성대, 여고시절로 되돌아간 교복 차림 수학여행 이벤트는 감동도 주었다는 전언이다.

미국서 공부할 당시 세계 57곳 관광개발사례 연구에서 도출된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어떤 경우에도 주민참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신라문화원은 그걸 증명했다. 이런 여행의 가치를 인식해준 하나은행에도 똑같은 평가를 내린다. 관광도 경제다. 소비 역시 공급만큼 중요하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경주#여행#소비#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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