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재동]위기극복에 만족한 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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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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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7-4-7’은 이 정부가 가장 먼저 포기한 대선공약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당(黨)이 정권을 연임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향후 10년의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임기 내엔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취임도 하기 전에 인정한 셈이다. 지금 와서 보면 이 대통령 말대로 또 여당이 집권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앞으로 5년간 제아무리 폭풍 성장을 한들 10년 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가 힘들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정권 최대의 아킬레스건이 될 뻔한 성장률 지표를 오히려 영민하게 역이용했다. 금융위기를 함께 겪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니 훨씬 훌륭한 수치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부분 선진국들이 2008년 이전 GDP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1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외환위기가 DJ에게 그랬던 것처럼 경제위기는 이 정권에 크나큰 기회였다.

요즘 정부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재정건전성이다. 임기 말에는 정권의 경기부양 욕구가 본능처럼 솟아나는 게 보통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놀랄 만큼의 자제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출을 10조 원만 늘려도 성장률 3%는 무난히 지킬 만한데도 정부는 “무리하게 부양책을 쓰면 항상 뒤탈이 난다”며 재정 문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다. 한 경제부처의 고위 관료는 “단임제에선 누구든 임기 말이 되면 역사에 공적으로 남기고 싶은 게 생긴다. 이 대통령은 위기도 잘 극복하고, 거기다 재정까지 건실하게 지켰다는 점을 평가받으려 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물론 눈폭풍 쓰나미를 맞아 얼어 죽지 않고 곳간까지 탄탄히 지킨 것만 해도 박수를 쳐 줄 일이다. 그런데 막상 고된 저성장의 시대를 마주하려다 보니 못내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현실을 버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앞날의 먹거리를 챙기는 데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가 위기대응을 하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변해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정부는 구한말 서랍 속에서 꺼낸 것 같은 낡은 처방만 고집한 느낌이다. 수출에 대한 집착으로 (아직도 공식적으론 부인하지만 당시 금융 관료들이 모두 인정하는)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이다 금융위기를 맞고는 임기 말에야 허겁지겁 내수를 키우겠다고 나섰다. 물가는 그냥 때려잡기 바빴고 식량과 에너지 등 자원 정책도 천수답(天水畓)을 반복했다.

공무원들이 휴가를 국내로 다녀오면 내수가 살아나고, 에어컨을 끄고 찜통에서 일하면 전력난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 게 이 정부의 한계였다. 식량위기의 대응책으로 나온 ‘우리 밀 소비 운동’은 또 어떤가. 이런 땜질식 정책들을 나열하다 보면 이 정부가 대놓고 선언만 안 했다 뿐이지 747과 함께 성장을 위한 백년대계마저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 5년을 돌이켜 봤을 때 우리 경제에 어떤 구조적인 진전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위기 이후를 준비하는 각국의 변화 속도는 숨이 가쁠 지경이다. 8% 성장의 벽에 막힌 중국은 과도한 수출·투자 의존도를 줄이고 대대적인 경제 자율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 금융으로 망한 미국이 제조업 부흥을 위해 온 힘을 쏟는가 하면 중동은 석유 고갈 이후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자유경쟁의 인센티브를 줄이며 그나마 꺼져 가는 성장의 불씨를 짓밟고 있고 정부는 그에 맞설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다. 이 정권의 최대 치적이 ‘불황을 잘 견딘 것’이었다면, 최대 실책은 ‘불황을 견딘 데 만족했던 것’이라 하고 싶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뉴스룸#유재동#경제위기#이명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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