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석호]북한 ‘대미 先軍외교’의 종언?

  • Array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1990년대 초 몰아친 탈(脫)냉전의 바람은 북한에 ‘생존의 위기’였다.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선 러시아는 사회주의 소련이 북한에 제공했던 막대한 원조와 차관, 청산결제 제도 등 다양한 혜택을 중단했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강화하던 중국도 원유를 국제시세의 3분의 1에 퍼 줬던 우호무역을 중단했다. 붕괴 직전의 소련과 돈벌이가 더 중요했던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면서 북한은 사실상 부모 잃은 고아 신세로 전락했다.

북한은 살아남기 위해 미국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소련 제국을 누르고 세계의 경찰관으로 우뚝 선 유일 초강대국, 달러가 흘러넘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들어갈 입장(入場) 허가권을 쥔 나라. 좋건 싫건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그래야 원조를 얻고 미국을 싫어하는 이웃 나라의 동정을 살 수 있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쿠바와는 달리 북한은 군부 주도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섰다.

서훈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도발과 대화를 번갈아 하며 강대국 미국을 끌고 다녔던 외교 행태를 ‘선군(先軍)외교’라고 명명했다. 김정일은 핵과 미사일 개발 카드로 미국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낸 뒤 경제 지원을 얻어 냈다. 빌 클린턴 행정부도,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그의 교묘한 외교술에 춤을 췄다.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225만5500t의 식량을 인도적 지원 형식으로 퍼 줬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선군외교의 약발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 실험과 네 차례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고 먹을 것을 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순진한 ‘희망적 사고(思考)’임을 깨닫게 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부시와 클린턴 대통령의 실패 경험을 빗대 “같은 말(horse)을 세 번 사지 않겠다”며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아예 무시했고 골치 아픈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서울로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죽은 뒤 홀로서기를 한 아들 김정은이 어떤 외교정책을 펼지는 북한 연구자들의 흥미로운 관찰 포인트였다. 최근 북한 정권 2인자 장성택의 떠들썩한 중국 방문은 북한 외교정책 ‘패러다임 변화’의 전주곡 같다. 20여 년 동안 미국에 초점을 맞춘 ‘단극체제 패러다임’에서 미국과 중국, 제3세계를 두루 포괄하는 ‘양극체제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다.

우선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이 바로 곁에 있는데, 힘이 빠져 가는 미국에 다걸기(올인)할 필요가 없다. 일부 외신이 보도한 김정은의 이란 비동맹회의(NAM) 참석설은 일단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할아버지 김일성이 과거 제3세계 국가들을 규합해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펼친 것처럼 손자 김정은은 변두리 외교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도 ‘할아버지 따라하기’를 하는 셈이다.

물론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 지원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중국이 한눈을 팔며 자신을 섭섭하게 할 경우에 써먹는 ‘동맹 강화용’일 가능성이 크다. 그 전략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국제체제 변화 속에서 김정일 표 북한 생존전략인 ‘대미 선군외교’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석호 국제부 차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광화문에서#신석호#북한#북한 핵개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