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올랑드의 달콤하지 않은 100일

  • Array
  • 입력 2012년 8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보통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12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얼핏 들으면 잘 안 믿기지만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의 제5공화국(1959∼) 출범 후 겨우 두 번째 좌파 대통령이다. 우리에게 이름이 익숙한 프랑수아 미테랑(1981∼1995)이 첫 번째, 나머지는 모두 우파 대통령이었다.

50여 년 만에 두 번째로 배출된 좌파 대통령이어서 프랑스 국민의 기대도 컸다. 지난해 상원 선거에서 5공화국 처음으로 사회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국민은 6월 총선에서도 사회당에 압승을 선사했다. 올랑드는 양팔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겠다며 취임식에 가족과 친지를 초대하지 않았던 올랑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각료의 연봉을 30% 삭감하며 고통 분담에 앞장섰다. 공약대로 연금수령 연령도 62세에서 60세로 되돌렸다. 의회를 ‘조정, 통제’하는 여당 1인자로서의 권한도 총리에게 넘겼다.

물론 총리에게 ‘진짜’ 권력까지 넘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툭하면 여당 의원들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식사하면서 군기를 잡고 의회 사안에 일일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며 절대군주 같은 권력을 휘둘렀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다. 또 올랑드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나, 여름휴가를 떠날 때 일반 열차를 이용하는 등 서민의 대통령이라는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그도 시련을 피해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첫 위기는 예상치도 못했던 동거녀 안방마님들의 싸움에서 비롯됐다. 현 안주인인 발레리 트리르바일레 여사가 6월 총선을 앞두고 올랑드의 전 안주인이자 대선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씨의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려 국가적 논란거리를 만든 것. 보통 대통령의 특별한 안주인이 벌인 장미의 전쟁은 퍼스트레이디의 정치개입 논란과 함께 대통령이 가정 문제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부르며 큰 상처를 남겼다.

최근 집시 퇴출 문제 역시 올랑드 대통령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다. 파리 리옹 릴 등 대도시에 있는 집시캠프를 철거하고 손에 300유로를 쥐여 줘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사실상 강제 추방 조치가 잇따르자 “사르코지 정권의 실정을 답습하느냐”며 사회당 내부는 물론이고 공산당과 인권단체의 반발이 뒤따르고 있다. 올랑드는 대선 유세 때 “집시를 돌려보내지 않고 일자리를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집시 추방은 정작 국민 다수가 원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연대와 관용을 중시하는 프랑스 국민이지만 지난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안팎이 집시 추방을 지지하는 속내를 보이고 있다.

올랑드의 가장 큰 시험대는 유럽 재정적자의 폭풍 앞에 선 프랑스 경제다. 연금수령 연령 복귀, 공공지출을 통한 일자리 증가, 기업과 부자에 대한 증세 등 국민에게 제시했던 달콤한 공약들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이 EU 25개 회원국이 합의했던 신재정협약에 대한 의회 비준을 요청하자 일부 동료 의원들이 들고일어난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신재정협약은 올랑드가 대선 전 “성장은 없고 긴축만 있다”며 반대했지만 실제로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 게다가 실업률은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고 무역적자는 큰 폭으로 증가한 데 이어 올 3분기에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에 돌입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경제를 살리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공공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 앞에 선 올랑드. 국민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더는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올랑드#사회당#프랑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