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낙인]‘경제 민주화’라는 경고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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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정치권력의 세습은 상상할 수 없지만 부와 기업의 세습은 당연시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정치권력은 헌법이라는 틀에 매인다. 이런 정치권력은 자신들만의 성채를 쌓아 가는 경제권력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재벌 탐욕이 국민경제 선순환 왜곡


그러나 비록 공산주의가 현실 국가사회에서는 실패했을지라도 그들이 뿌린 씨앗은 시장경제에 새로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시장경제 모델 국가인 미국에서의 독과점 규제가 이를 입증한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아예 국가 형태로서 경제사회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적’ 공화국임을 헌법에 명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1948년 제헌헌법에서 헌법에 독립된 ‘경제 장(章)’을 마련하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제헌헌법 이래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될 뿐이다.

제헌헌법의 통제경제 체제에서 점차 시장경제적 요소를 강화해 왔지만 기본틀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엔 국민경제적 기반도 취약했다. 해방공간 당시에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국민의 3분의 2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선호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더욱 뒷받침한다.

하지만 같은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 이르러서는 확연히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뿐이다.

이 틀은 1987년 헌법에서 제1항은 원칙적으로 유지되면서 5공헌법의 제2항과 제3항을 아우르는 제2항에서 ‘사회정의’를 대체하는 ‘경제의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경제에 관한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더욱 강화하는 식으로 바뀐다. 결국 현행 헌법상 경제 질서는 기본권으로서의 사유재산권 보장(제23조 제1항)과 더불어 시장경제(제119조 제1항)가 그 기본 축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 원리(제23조 제2항)와 경제의 민주화(제119조 제2항)는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한다.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명명한다. 즉, 시장경제는 어간(語幹)이고 사회적은 그 수식어이다. 이처럼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논쟁의 준거는 동시대를 관류하는 공동체적 가치다.

요즘 경제 민주화의 요구는 시장경제의 왜곡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양극화 현상은 공동체가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직면한다. 순환출자 규제 같은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일련의 법적 규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가진 자의 덕(virtue)이 요구된다. 그것은 가진 자의 자비가 아니라 윤리성에 터를 잡아야 한다.

“양극화로 공동체 해체”위기 고조

재벌의 탐욕은 시장을 교란하고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왜곡시킨다. 하지만 재벌을 지배하는 이들은 소유지분을 뛰어넘어 초법적인 힘을 휘두른다. 그 과정에서 골목상권까지 쓸어 담는 약육강식의 승자독식과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기 마련이다.

기업을 사유화하는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재벌의 순기능과 역기능의 조화만이 그 존재이유를 정당화한다. 투명한 경영, 기업과 기업인의 윤리와 책임의식의 제고만이 글로벌 사회에 순응하는 길이다. 그것은 정치의 계절에 펼쳐지는 정치적 수사(修辭) 이전에 해결되어야 할 선결과제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시론#성낙인#경제 민주화#기업 사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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