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청춘, 지금은 찌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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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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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장엄하고 흥미진진한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보다가 난데없이 ‘찌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전에는 없지만 아마도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일 거다.

1996년 아직 신예에 가깝던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이 내놓은 ‘트레인스포팅’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마약에 찌든 영국 청년들의 찌질함이 지배하는 영화다. 주인공인 이완 맥그리거가 마약 살 돈을 구하러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쫓기는 도입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질주하는 그의 스텝에 맞춰 쨍쨍거리며 울리던 브리티시 록은 당시 수많은 찌질한 청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방황하는 스무 살, 종로의 영화관에 쭈그리고 앉았던 필자와 친구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바로 그 보일 감독이 16년 뒤 영국, 아니 전 세계 문화계의 거장이 되어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뒷골목 젊은이들의 암울함을 그렸던 그가 산업혁명과 비틀스, 007을 전면에 내세워 영국의 자존심을 극대화한 개막식을 만든 것이 아이러니컬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찌질한 청춘을 연상한 것은 요즘 마음이 헛헛한 우리 젊은이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교육, 진로, 취업 문제를 취재할 때마다 그들의 좌절감, 무력감을 본다. 청년 실업이 늘어만 가는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인터넷과 악플로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박태환 선수의 실격 소동이 이는 동안 SNS에 뜬 글들을 보면서 더욱 절감했다. 확인되지 않은 (결국 허위로 드러난) 중국 심판 음모론에 이은 ‘짱개 공격 선동론’은 무서웠다. 박 선수를 비판한 한 모델 지망생에 대한 성토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가득했다. 이런 글에서 묻어나는 감정은 트레인스포팅을 보며 느꼈던 청춘의 불안감, 사회에 대한 분노와 닮아 있었다.

다시 보일 감독으로 돌아가자. 트레인스포팅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그 뒤 미국과 유럽 각국을 오가며 SF, 코미디, 멜로,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인도 빈민가 고아의 퀴즈쇼 도전기를 담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동시에 안았다. 그의 작품 중에는 주인공이 곤궁하거나 엄청난 위기를 맞지만 이를 극복해 내는 과정을 담은 것이 유독 많다. 홀로 여행하다 절벽 사이에 팔이 끼인 주인공이 닷새 만에 직접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한 실화를 그린 영화 ‘127시간’(2010년)이 대표적이다.

보일 감독의 성장 과정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되던 해부터 부모로부터 신부가 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제작자가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10대 중반부터 그 길을 향해 걸었다. 지역 방송국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고, 늘 새로운 형식과 주제에 도전했다.

엄격한 부모의 요구와는 상반된 길을 걸으며 갈등을 겪었을 10대 소년. 그가 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자가 된 모습을 보며, 또 그가 풀어 낸 창의력과 스토리텔링의 결정체가 전 세계로 방영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키보드 앞에서 답 없는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고민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16년 뒤 자신이 써 낼 스토리텔링을 위해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 너무 ‘꼰대’ 같은 이야기인가?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뉴스룸#김희균#올림픽#대니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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