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년 만에 무너지는 전면 무상보육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그제 “현재의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은 재벌가의 아들과 손자에게도 정부가 보육비를 대주게 되는데, 이런 제도가 공정한 사회에 맞는 것이냐”며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 선별 보육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 반년을 맞은 0∼2세 무상보육의 폐해는 심각하다. 가정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전업주부마저 젖먹이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시작했다. 보육 수요가 폭증하면서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 예산을 이미 소진하고 백기를 들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당초 무상보육 대상은 1665명이었으나 지금은 5113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전면 무상보육은 시작 반년 만에 예산 부족으로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오죽하면 예산 부처의 차관이 여야 합의로 의결한 전면 무상보육을 폐지하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겠는가.

당초 정부 예산안은 소득 하위 70%에 대해서 보육 지원을 하고 이를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는 내용이었으나 국회가 지난해 말 일방적으로 0∼2세 무상보육을 결정하고 예산안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3∼4세보다 0∼2세 무상보육을 먼저 채택한 것은 해당 아동의 수가 적어 예산이 덜 들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심각한 판단 착오였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책은 우선순위, 부담능력, 효과를 치밀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소득에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되 유치원 보육료는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 이들 나라에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맞벌이 부부 이외에는 드물다. 반면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이용자들은 전업주부가 더 많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늦은 시간까지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길 수 없어 육아도우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무상보육 체계가 이런 기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자체 예산이 모자라 쩔쩔매는 판에 부유층 자녀나 집에서 자녀를 기를 여유가 있는 가정에까지 보육비를 지원할 필요는 없다. 예산이 있으면 차(次)상위 계층에게 양육 수당으로 지급해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육 현장에서는 전면 무상보육에 따른 혼란이 심각한데도 여야 정치권은 “기존 정책을 유지하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수요자들이 공짜에 맛을 들이면 끊기 힘들다. 정부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잘못된 무상보육에 엄마들이 길들기 전에 선별 지원으로 선회해야 한다.
#사설#무상보육#보육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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