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승훈]광역정전 대재난 막으려면 전기료 대폭 올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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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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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전기는 스위치만 올리면 항상 들어오는 것이었기에 작년 9월 15일 느닷없는 순환단전으로 많은 사람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 전례 없는 국가적 충격의 책임을 물어 단전을 결단한 책임자들이 면직을 당하고 담당 공무원들도 문책을 받았다. 사태의 본질은 낮은 요금이 누적시킨 전력 수요 급증을 공급능력이 감당하지 못한 탓이었지만 분노한 여론이 그 원인을 관리 부주의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 중인 발전설비는 내년 말 이후라야 가동이 가능하므로 앞으로 두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겨울을 지금의 전력 공급능력만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전기 소비는 발목 잡힌 공급능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작년 소비증가율은 4.8%로 3년 전 증가율의 2배였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 전력 공급이 달릴 때마다 수시로 조업 단축을 강요받고 있는 산업계 소비자들의 협조도 한계가 있는 만큼 무차별적 순환단전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담당자가 자기 자리를 걸고 순환단전을 단행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떻게든 단전을 막아보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면서 윗사람의 눈치만 살핀다면 발전기들은 과도한 부담에 휘청거릴 것이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순간 모든 발전기가 주저앉아 전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광역정전이 발생할 것이다.

일단 광역정전 사태가 벌어지면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에 전철이 서고 엘리베이터와 냉장고도 사용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재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인근 지역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우리나라 전력공급 체계로는 도와줄 이웃도 없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광역정전을 당하면 복구에 석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해의 4분의 1을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면 국내총생산(GDP)은 4분의 3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마치 산업시설의 4분의 1이 전쟁에서 폭격을 맞은 것과 같은 재난이다.

그런데 우리는 광역정전의 대재앙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내년 말까지는 발전능력이 늘어날 수 없는데 전력 소비 증가세는 줄지 않고 있다. 계획정전에도 불구하고 발전능력을 총력 가동해야 하는 과부하 사태가 지속되면서 발전설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가고 있다. 요즘 수시로 발생하는 발전기 고장을 관리 부주의로만 몰아가면 안 된다.

발전설비뿐만 아니라 송배전 설비도 문제다. 낡은 설비는 적기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최신 설비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여론은 10조 원 이상의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에 요금 인상보다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구책이나 강구하라고 질책한다. 내 자리 보전이 먼저일 수밖에 없는 공기업 임직원은 적자를 늘릴 비용 지출을 미룰 수밖에 없고 그 사이 전력계통은 발전, 송전, 배전 등 모든 부문이 총체적으로 무너져 간다. 우리의 전력부문은 ‘퍼펙트 스톰’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아직 해법은 있다. 전력 수요가 공급능력 이내로 줄어들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스위치 올리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전기요금을 올리면 전력수요가 줄어든다. 발전설비는 숨을 돌리고 송배전 설비도 첨단화할 수 있다. 한가롭게 물가 파급효과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국민이 큰 폭의 요금 인상을 받아들이고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전기 소비를 2014년 이후로 미뤄야 광역정전의 대재난을 막을 수 있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광역정전#전기료#전력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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