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용]‘메이드 인 마인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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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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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산업부 기자
박용 산업부 기자
영국에서 ‘플러그 맨’으로 불리는 한국 청년이 있다. 그는 아이디어 하나로 영국인들이 60년 이상 쓰던 투박한 직육면체 모양의 전기 플러그 역사를 새로 썼다. 플러그에 달린 3개의 핀 중 나란히 있는 2개의 핀을 돌리고 접으면 크기를 70% 줄일 수 있다는 ‘접이식 플러그’ 아이디어를 고안한 것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2010년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릿 인슈어런스 어워드’를 탔다. 주최 측은 “창조적인 발상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플러그 맨’은 마산제일고를 졸업하고 중앙대를 다니다가 2001년 영국으로 디자인 유학을 간 최민규 씨(32)다. 최 씨는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한 차세대 디자인 리더 중 한 명이다.

지난달 방한한 그에게 ‘접이식 플러그’를 디자인한 이유를 물었더니, “가방에 넣은 노트북 플러그가 종이 문서를 찢고, 노트북 표면도 긁어놓곤 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흔히 겪는 문제가 혁신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최 씨가 더 커 보였던 건 그 다음 대화를 듣고 난 뒤다. 그는 “디자인을 팔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영국인 친구와 함께 ‘메이드 인 마인드(Made in Mind)’라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머릿속 아이디어 빼고는 가진 게 없었던 최 씨에게 창업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접이식 플러그’의 디자인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시장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그랬다. 종잣돈은 영국 정부의 ‘디자인 런던 인큐베이터’, 한국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 육성’ 자금을 받아 마련했다. 시제품 생산 자금은 영국 투자자들의 투자로 해결했다. 생산은 영국보다 제조 역량이 한 수 위인 한국 중소기업을 찾아 맡겼다.

최 씨는 이렇게 해서 올해 2월 말 영국 시장에 25파운드(약 4만5000원)짜리 스마트폰용 접이식 어댑터 ‘Mu’를 선보였다. 특허도 6개나 출원했다. 내친김에 태블릿PC용 제품을 개발하고 아시아와 중동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한국 디자인은 제조업과 함께 성장해 왔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美術輸出(미술수출)’ 친필 휘호까지 쓰며 산업디자인 육성에 공을 들였다. 어설픈 포장과 디자인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싸구려로 만든다는 혜안(慧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거나 외부 디자인 전문가를 활용하는 회사는 12.8%에 불과하다. 디자인 관련 부서 책임자 중 37.9%가 차장이나 과장급이다. 전문 디자인 기업의 55.8%는 ‘저임금에 따른 전문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중국에서 만든 아이폰에 ‘디자인드 바이 애플(designed by Apple)’이라고 당당히 적는 애플 같은 혁신 기업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기업가가 나오기 힘든 여건이다.

지식경제의 경쟁력은 손과 발보다는 머리에서 나온다. 창조와 혁신으로 ‘이중 유리창’에 도전하는 제2, 제3의 ‘메이드 인 마인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새로운 성장엔진이다. “디자인은 제조업의 부속물”이라는 사회적, 개인적 편견의 ‘이중 유리창’을 스스로 깨고 나온 최 씨의 도전이 그래서 멋져 보인다.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플러그 맨#아이디어#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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