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퍼주기 vs 지켜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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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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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미하일 비게(36·독일 프리랜서 방송인)의 여행은 독특했다. 150일이나 걸린 남극까지 3만5000km의 여행을 단 한 푼도 지니지 않고 계획대로 마친 것이다. 이 무전여행에는 엄격한 원칙이 있었다. 배낭 무게는 최소화, 단 한 닢의 동전도 없이, 순간순간 부닥치는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반드시 사람을 통해 해결하고 민폐는 가급적 피한다는 것이었다. 차비는 집사(執事)나 짐꾼으로 일해 마련했고 잠은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잠자리 무료 제공 네트워크―으로 해결했으며 고픈 배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덤프스터다이빙(Dumpster diving)으로 채웠다.

덤프스터다이빙은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돼 확대되고 있는 환경운동이다. 덤프스터란 트럭이 싣고 이동하도록 고안된 대형 철제 쓰레기통. 대형마트의 덤프스터는 늘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임박한 식품과 고장과 흠집이 난 상품으로 가득하다. 덤프스터다이빙은 거기에 들어가 먹어도 될 식재료와 쓸 만한 물건을 주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주부는 TV에 출연해 온 가족이 이 음식을 먹으며 가끔은 디너파티도 벌인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비게가 쓰레기통에서 만난 독일인 페터의 말이 재밌다. 그의 한 달 생활비는 200유로인데 주로 보험료로 지출하고 먹을 것은 쓰레기통에서 구한단다. 숙소는 캠핑카다. 란 프리외라는 미국인도 블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버린 음식의 질이 이렇게 좋은 줄 알면 놀랄 거라고. 코코넛밀크 캔은 단지 찌그러졌다는 이유로, 5파운드 봉투의 오렌지도 흠집난 한 개 때문에 통째로 버려진다고 했다. 그는 쇠고기도 유기농 사육한 것만 골라먹는데 한 번도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음식쓰레기는 이제 환경 문제를 넘어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목받는 사회 문제다. 허비의 끝이 식량 부족이란 국가재난이 될 터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버려질까.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보고는 놀랍다. 세계적으로 13억 t(2011년). 소비 목적으로 생산된 음식물의 3분의 1이다. 이 중 2억2200만 t은 먹는 데 문제없는 과일과 야채다. 유럽과 미국을 보자. 1인당 95∼115kg이다. 우리는 어떨까. 한 특급호텔은 매일 드럼통(180L) 4, 5개를 채운다. 철도도시락도 연간 90만 개(2011년) 중 5%가 버려진다. 기내식도 늘 일정량 폐기된다.

그런데 버려진 식품 중 상당량은 신선하다. 도시락도 유통기한(24시간)이 7시간이나 남은 것이다. 도쿄의 콤비니(편의점) 알바 체험을 밝힌 한 블로거의 글에도 나온다. 한 점포에서만 매일 바구니로 세 개(2만 엔 상당) 분량의 벤토(도시락)가 버려지는데 역시 유통기한이 반나절이나 남은 거라 그걸로 생활비를 절약했단다.

이걸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버리는 이유는 만약의 ‘사고’ 때문이다. 그 고민은 미국도 같다. 하지만 그들은 해결했다. 이런 식품의 수집 전달 유통 네트워크가 잘 발달한 건 그 덕분이다. 열쇠는 ‘위험이 상존해도 해야 하는 게 선(善)’이란 철학과 믿음이다. 1996년 발효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음식기부 법(The Emerson Good Samaritan Food Donation Act)’이 그것. 선행 중에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잘못에 대한 선처를 보장한 법이다. ‘퍼주기’만 능사로 아는 우리 정치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광화문에서#조성하#카우치 서핑#덤프스터다이빙#음식물 쓰레기#음식기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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