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추현만]들쥐도 땅굴팔 땐 반대쪽에 ‘비상구’… 법 고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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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사는 들쥐나 미어캣 같은 동물들은 뱀과 같은 천적의 공격을 대비해 땅속에 굴을 팔 때 입구 반대편이나 입구와 다른 방향으로 통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천적이 침입했을 때 탈출해 위기를 모면하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 발생한 노래주점 화재 건물의 경우 인간의 천적을 화염과 연기로 가정했을 때 피난을 위해 만들어 놓은 지상층으로 연결되는 직통계단 2곳은 주 출입구 반대방향이 아닌 모두 주 출입구 인근에 몰려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주 출입구 반대편에는 소방관련법상 ‘다중이용업소에 설치하는 안전시설 등의 설치기준’에 따라 비상구가 설치됐지만 구획된 공간으로 용도 변경돼 그 역할을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더 큰 문제는 건축법 시행령 제34조(직통계단 설치)에 이번 화재 장소의 용도와 같은 노래주점 용도로 쓰는 층의 바닥면적이 200m² 이상인 곳에는 문화 및 집회시설 등과 동일하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피난할 수 있도록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을 2곳 이상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8조 직통계단의 설치기준에는 ‘직통계단의 출입구는 피난에 지장이 없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어 설치하고…’라고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소방관련법으로 설치하는 비상구는 사다리를 이용하는 최소한의 탈출구(가로 75cm, 세로 150cm)로서의 규격과 함께 주 출입구 반대방향으로 설치할 것과 주 출입구로부터 영업장의 누운변(長邊) 길이의 2분의 1 이상 떨어진 위치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건축법상 내화 구조로 안정적이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직통계단이자 피난계단은 세부적인 설치 간격과 방향이 모호해 부산 화재 건물처럼 대부분 주 출입구 인근에 설치되고 있다. 심지어 주 출입구에 위치해 있는 엘리베이터 통로에 직통계단 2개가 동시에 설치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건물 이용의 편리성과 건축주의 경제성이 감안됐겠지만 미어캣이 굳이 굴 하나를 더 파 놓는 것을 보면 동물들이 사람들보다 위험 예지능력이 뛰어남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노령인구의 급증으로 노인요양시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피난계단이 지금의 막연한 기준처럼 주 출입구에 편중돼 설치된다면 화재 발생 시 대량 인명피해가 되풀이되는 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피난계단의 설치 목적에 맞게 주 출입구의 반대방향에 직통계단을 설치하고 계단 간 간격을 비상구 설치기준과 같이 일정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화재 발생 지점에 따라 피난 방향이 선택되도록 반드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번 화재로 희생된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소방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애도와 명복을 빈다.

추현만 인천남부소방서 예방안전과장
#비상구#건축법#소방관련법#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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