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세계를 바꾼 폴 잡스의 入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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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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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에 대한 공식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이 잡스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잡스와 친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다고 증언한다. “무엇을 만들든 완벽히 통제하려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스티브 잡스, 입양되지 않았다면


스티브는 어릴 때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았다. 예닐곱 살 때 길 건너편에 살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던 스티브는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그의 양부모(養父母)가 말했다.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사실이었다. 스티브의 양부 폴 라인홀트 잡스는 위스콘신 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지만 강한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돼 있었다. 양모 클래러 해고피언은 아르메니아 이민 가정 출신으로 어렸을 때 뉴저지 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부부는 금실이 좋았으나 아이가 있는 완벽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 스티브는 폴 잡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입양(入養)될 뻔했다. 생모는 원래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아이를 입양시키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변호사 부부가 입양하기로 돼 있었으나 정작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부부는 “여자아이를 원한다”라며 발을 뺐고, 결국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약속한 폴 잡스 부부가 아이를 데려갔다. 폴 잡스는 실제로 스티브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꼬박꼬박 저축했다. 그런데도 스티브가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 리즈대를 고집해 애를 태웠다. 나는 가끔 ‘변호사 부부가 잡스를 입양했더라도 오늘의 잡스가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고 다니는 스티브를 변호사 양부였다면 어떻게 다뤘을까. 적성에도 맞지 않는 로스쿨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을 수도 있고,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아들은 일찌감치 가출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제(5월 11일)는 7회째 맞는 입양의 날이었다. 지난해 국내 입양 건수가 1548명이니까 하루 4가정이 아이를 입양한 셈이다. 현대사회를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데 나는 입양부모를 현대의 영웅이라고 부른다. 한국처럼 친자식도 키우기 힘들어 아이도 안 낳는 사회에서 남의 자식을 품는다는 것이야말로 ‘희생과 헌신’이라는 자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친자식을 버리거나 제대로 키우지 않는 부모도 많으니 생부는 ‘정자은행’에 불과하다고 한 스티브 잡스의 말에도 진실의 일면이 담겨 있다.

‘가슴으로 아이 낳는 부모’ 위대하다


친자식 3명을 낳기도 전에 3명의 아이를 입양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인터뷰에서 친자식을 낳았는데도 입양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 데 대해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딸 둘을 입양한 신애라 씨는 “배가 아파 낳은 아들 정민이와 가슴이 아파 낳은 딸들이 모두 똑같이 소중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신 씨가 더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 한국처럼 배타적인 사회에서 아이 키우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완벽성에 대한 스티브의 집착은 기계광이었던 아버지 폴 잡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한다. 스티브의 여동생이 생부를 찾아냈지만 스티브는 그를 만나기를 거부한다. 스티브와 생부는 식당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서로 모르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스티브는 누군가 폴을 양부라고 부르면 불같이 화내며 친부라고 고쳐 부르라고 했다. 폴 잡스는 아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보다 스티브가 넥스트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시절인 1993년 사망했다. 입양이라는 위대한 투자가 스티브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오늘과 내일#정성희#스티브 잡스#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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