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권재현]지금 카를 슈미트가 떠오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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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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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문화부 차장
권재현 문화부 차장
“자유주의적 개념은 (적대를 본질로 하는 정치적 현상에 무지하기 때문에) 윤리학과 경제학 사이에서 움직인다.”

2000년대 들어 정치학자들에게 재조명 받는 나치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잊혀졌던 슈미트가 주목받는 것은 그의 정치사상에 동조해서가 아니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역사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찬미 받던 자유민주주의가 심한 무기력 증세를 보이면서 그의 자유민주주의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기초하는 ‘정치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정치의 영역에 엉뚱하게도 윤리나 경제의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도 맞물린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성(윤리)과 효율성(경제)을 중시하면서 정치혐오를 여과 없이 드러낸 일들을 되돌아보자. 이 대통령은 정치인이면서도 자신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의도 정치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 오지 않았던가.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적대를 본질로 한 정치의 만개다.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넘어 반(反)MB의 기치 아래 범야권세력의 결집을 초래했다.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했던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구악정치의 행태를 반복했다.

이런 반정치의 악순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되풀이돼 왔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정권 차원으로 한정하기보다는 국민 전체의 의식 차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특히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다원주의를 표방하면서 실제론 강렬한 일원주의에 사로잡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부와 명성, 권력은 각기 다른 가치기준이었다. 오늘날엔 돈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입신출세의 방편이었던 공부도 마찬가지다. 과거 ‘국어 영어 수학’으로 나뉘었던 평가기준이 영어 하나로 일원화되고 있지 않은가.

정치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고유 논리가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의 기업논리가 지배담론이 된 지 오래다. 정치의 정점에 선 대통령이 정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은 그래서이다. 심지어 대통령으로부터 사면 복권의 혜택을 입은 기업총수가 그 대통령의 정부에 대해 “겨우 낙제는 면했다”고 면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 분야에서 나타난 이런 일원화 현상은 또 다른 폐해를 낳는다. ‘코드정치’라는 논리 아래 다른 영역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자율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임면권자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예술계의 수장을 꿰차고 ‘개혁’이란 명분 아래 문화예술의 본령과 동떨어진 일을 벌이다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이 정파의 좌우를 넘어 많아졌다.

갈수록 정치는 공허해져 가는데 그 ‘텅 빈 정치’가 다른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우선 정치가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동시에 특정 가치만이 힘을 쓰는 일원주의에 맞서 균형 잡힌 다원주의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슈미트의 비판을 뛰어넘어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인 동시에 경제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길이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
#@뉴스룸#권재현#카를 슈마트#코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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