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2시간13분’+‘9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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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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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지난달 28일 영국 에든버러의 한 호텔에서다. 아침 식사를 하며 집어 든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훑다가 갑가지 터진 웃음에 음식이 목에 걸릴 뻔했다. ‘입국수속에 화가 난 항공사들’이란 제하 기사 중의 ‘맷(MATT)’이란 만평이 발단이었다. 한 흑인 육상선수가 ‘입국심사’라는 사인 아래 길게 늘어선 줄 끝에서 출발 자세를 취한 한 컷 그림인데 그 위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런던 2012, 우사인 볼트 100m 목표 2시간13분9초58 이내.’

우사인 볼트가 9초58의 신기록을 경신하려면 먼저 히스로공항 입국심사대부터 ‘2시간13분’ 이내로 통과해야 할 거라는 조크다. 공항의 수속 지연을 질타한 풍자인데 이날 이 신문에 보도된 후 TV뉴스는 물론이고 의회까지 시끄러워진 핫이슈다. 히스로공항은 영국의 관문이다. 183개 도시(90개국)를 오가는 80개 항공사를 통해 연간 6800만 명이 이용하는 유럽 최대 규모 공항이다. 터미널도 5개(이 중 한 개는 공사 중)고 석 달 후엔 올림픽도 맞는다. 그런데 이 공항에서 연일 소란이 끊이질 않는다. 진원지는 1∼3시간씩 대기하는 입국수속장. 25일엔 치미는 화를 참다못한 스페인 여행자가 수속대로 돌진하자 대테러 요원까지 불러 제지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살펴본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 시간 대기는 기본. 이나마도 간단 심사에 이용자도 적고 별도 심사대까지 있어 수속이 신속한 유럽연합 여권 소지자의 경우다. 나머지―비유럽연합국가―는 두세 시간씩 기다리기 일쑤다. 어떤 날에는 오후 11시까지도 수백 명씩 대기한단다. 이 경우엔 공항의 대중교통도 끊겨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4월 보름간 목표치(수속 시간 45분)를 달성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유럽연합 심사대는 물론이고 신속통로(Fast Track·비즈니스 이상 석 승객 전용)까지.

그런데 입국장만 문제가 아니었다. 28일 나는 보안검색에만 50분을 기다렸다. ‘50분’은 심각하다. 도착편이 연착되면 연결편 탑승―통상 2시간 여유―이 어려워서다. 영국은 항공네트워크도 치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에든버러공항에서 연결편(히스로발 대한항공) 탑승수속이 불가능해서다. 수하물도 히스로까지만 보내려 했다. 이러면 터미널5(영국항공 전용)에서 짐을 되찾아 터미널4로 이동, 대한항공에서 또 수속해야 한다. 통상 탑승수속은 출발 40분 전 마감되니 연착한다면 탑승 자체가 쉽지 않다.

다행히 이런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 내 사정을 듣고 도와준 현지항공사 직원 덕분인데 히스로행 짐표가 붙어 대기 중인 짐을 되찾아 인천행으로 바꿔준 것이다. 수속카운터 직원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게 드러난 셈이다. 히스로공항은 짐 배달 사고로 ‘악명’ 높다. 그래서 경험 많은 영국 출장자들은 갈아타기 전 항공사에 들러 짐 도착 사실을 확인한다. 인천공항에서는 불필요한 수고가 ‘의무’인 히스로의 현실. 여행레저잡지 ‘트래블+레저(Travel+Leisure)’가 선정한 ‘세계 최악의 공항 2010’(12곳)에 랭크된 이유다. 이런 실색할 상황을 겪고 나니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영국병이 도진 건가?’ 한 영국인의 히스로공항발 트위팅의 글대로 ‘올림픽선수단은 (런던행을) 재고해야 하지 않을지’.

―런던·에든버러(영국)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에든버러#히스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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