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수의 입법방해 제도화’ 민주주의 역행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몸싸움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간 협의를 통해 기존의 개정안 내용을 일부 수정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여야가 합의하거나 상임위원회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얻은 법안만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30일 임기가 시작되는 19대 국회에서는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같이 여야 간에 견해차가 큰 쟁점 법안은 여야 의석 분포로 볼 때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하다.

개정 국회법은 다수당과 소수당에 각각 당근과 채찍을 주는 형식적인 균형을 맞추었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크게 제한하고 본회의에서 소수가 무제한 토론으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가능하도록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했다. 반면에 안건조정제와 신속처리제 도입으로 소수당이 물리력으로 법안 상정과 처리를 저지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뒀다. 상임위원장석과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거나 회의장 출입을 방해할 경우 처벌도 강화했다. 예산안의 기한 내 처리도 명문화했다.

그러나 쟁점법안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려면 해당 상임위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야당이 반대하면 지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전례로 볼 때 물리력 행사에 대한 처벌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산안은 지금도 헌법에 처리 시한(12월 2일)이 정해져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원장은 “지금까지 그런 법이 없어서 국회가 잘못 운영된 것이 아니고, 있는 법조차 안 지켰기 때문”이라면서 “국회가 별로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폭력은 근절해야 한다. 그러나 몸싸움을 방지한다는 구실로 소수의 입법 방해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한 것은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민의 투표로 의석수를 결정하고 다수당이 입법의 주도권을 갖게 하는 선거 민의에도 어긋난다. 소수 야당이 입법을 좌지우지한다면 행정부의 권한이 위축돼 사실상 정권 교체의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 헌법은 법안 등의 처리에서 단순 과반을 넘어 특별 정족수가 필요한 것은 모두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다. 재적 의원의 절반도 안 되는 127명의 찬성으로 쟁점법안 처리에 5분의 3 이상 찬성이 필요한 사실상의 ‘헌법적 규정’을 만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사설#입법방해 제도#몸싸움 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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