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어제 본회의 취소로 최종 통과가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개정안 가운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신속처리법안 지정요건인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은 그대로 둔 채 일부 수정을 제의했으나 민주통합당은 사실상 원안 처리를 고집했다. 이 법안은 국회 폭력을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취지로 여야가 합의해 운영위원회까지 통과시켰지만 정작 폭력을 막는 장치는 갖춰져 있지 않고 입법 기능만 마비시키게 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문제투성이의 법안에 선뜻 합의해준 황우여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신속처리법안 지정요건인 ‘재적 5분의 3’은 헌법개정안 의결 요건인 ‘재적 3분의 2’와는 15분의 1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족수가 강화된 것이다. 일반 입법의 요건을 이렇게 까다롭게 하는 것은 ‘단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 법의 통과로 입법 기능이 마비된 불임(不姙) 국회가 됐을 경우 뒤늦게 이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면 그때는 몸싸움 방지법에 의거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 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 이 법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법안 무산은 당장은 절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성토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현재의 소수당이 다음 선거에서 얼마든지 다수당으로 바뀔 수 있다. 이번 4·11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연대의 득표율은 46.6%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친 득표율 46%를 앞섰다. 민주당은 다수당이 될 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의 일부 지도부는 이 법안이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날까지도 그 내용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총선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승리를 얻은 뒤 벌써 마음이 차기 당 대표, 국회의장,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등 콩밭에 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임기가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18대 국회가 19대 이후의 국회 운영을 좌우할 의사(議事) 진행 규칙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법안은 일단 폐기한 뒤 차기 국회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 폭력은 소수파가 완력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몸싸움 방지법을 다시 만든다면 불법적인 방해 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