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몸싸움 방지법’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어제 본회의 취소로 최종 통과가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개정안 가운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신속처리법안 지정요건인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은 그대로 둔 채 일부 수정을 제의했으나 민주통합당은 사실상 원안 처리를 고집했다. 이 법안은 국회 폭력을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취지로 여야가 합의해 운영위원회까지 통과시켰지만 정작 폭력을 막는 장치는 갖춰져 있지 않고 입법 기능만 마비시키게 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문제투성이의 법안에 선뜻 합의해준 황우여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신속처리법안 지정요건인 ‘재적 5분의 3’은 헌법개정안 의결 요건인 ‘재적 3분의 2’와는 15분의 1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족수가 강화된 것이다. 일반 입법의 요건을 이렇게 까다롭게 하는 것은 ‘단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 법의 통과로 입법 기능이 마비된 불임(不姙) 국회가 됐을 경우 뒤늦게 이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면 그때는 몸싸움 방지법에 의거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 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 이 법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법안 무산은 당장은 절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성토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현재의 소수당이 다음 선거에서 얼마든지 다수당으로 바뀔 수 있다. 이번 4·11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연대의 득표율은 46.6%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친 득표율 46%를 앞섰다. 민주당은 다수당이 될 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의 일부 지도부는 이 법안이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한 날까지도 그 내용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총선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승리를 얻은 뒤 벌써 마음이 차기 당 대표, 국회의장,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등 콩밭에 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임기가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18대 국회가 19대 이후의 국회 운영을 좌우할 의사(議事) 진행 규칙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법안은 일단 폐기한 뒤 차기 국회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 폭력은 소수파가 완력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몸싸움 방지법을 다시 만든다면 불법적인 방해 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몸싸움 방지법#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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